1307년 10월13일 새벽. 파리에 검거 선풍이 불었다. 공정왕 필립 4세가 전광석화 같은 템플기사단 체포작전을 펼친 것. 금요일이었다. ‘13일의 금요일’을 꺼리는 습속이 이때 굳어졌다. 연말까지 프랑스에서만 1만5,000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소극적이었지만 세속권력에 굴복해 로마 교황청을 이전한 아비뇽 유수의 주인공. 프랑스 왕의 압력에 전유럽 템플기사단을 조사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죄목은 이단죄. 고문과 거짓자백을 통한 기사단장의 화형을 마지막으로 템플기사단은 사라졌다. 십자군전쟁의 무공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던 템플기사단이 찍힌 것은 돈 때문. 영지가 사이프러스 섬 전체를 비롯해 9,000개 소에 달했다. 기부금과 세금ㆍ십일조 면제의 특권으로 부는 쌓이는 반면 청빈의 맹약으로 돈쓸 곳이 없어 유럽 각국과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여행자수표ㆍ어음교환 등 금융 시스템 구축에 투자한 결과다. 최초의 다국적금융집단인 템플기사단의 재산은 각국의 왕과 경쟁 기사단에 돌아갔지만 사람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았다. 일부 기사들은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이던 스코틀랜드로 탈출해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었다. 세계의 정치ㆍ경제를 뒤에서 좌우한다는 프리메이슨의 원류다. 포르투갈에서는 이름만 그리스도기사단으로 바뀐 채 살아났다. 대항해 시대를 연 엔리케 왕자와 희망봉을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가 그리스도기사단 소속이다. 템플기사단의 생명력이 보다 질기게 이어진 영역은 허구의 세계. 중세적 로망인 종교ㆍ군사적 무훈에 대한 열망과 비밀결사ㆍ금기에 대한 현대인의 호기심이 맞물려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 ‘푸코의 진자’와 영화 ‘인디아나 존스’ 등이 쏟아져 나왔다. 템플기사단을 소재로 삼은 작품군이 벌어들인 수입은 수십억달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