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쟁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미국의 전쟁영웅이다. 지난 1965년 9월 작전 중 격추돼 포로가 된 뒤 수용소에서 7년 반을 살았다. 수감 도중 20여차례의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회유에 굴하지 않고 동료들을 이끈 리더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군 포로의 행동수칙을 제정하는 등 저항운동을 주도했고 극한의 환경에서도 장교로서 품위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신념을 잃지 않았고 감옥에서 나갈 것과 결국에는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혹독한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는 "낙관주의자"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낙관주의자들은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나갈 거야'라고 말했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에는 나갈 거야'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부활절이 지나고 추수감사절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면 그들은 크게 상심한 채 죽어갔다"고 설명했다. 스톡데일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신념과 현재 처한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규율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믿음은 유지하되 현실의 냉혹함은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이런 이중성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명명했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주변 여건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미국의 나 홀로 성장세와 중국의 성장둔화가 악재다. 여기다 유럽연합(EU)이 최악은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신흥국은 외부변수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급격한 유가 하락으로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미국의 금리 인하가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 스톡데일이라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긍정과 신념을 강조하는 동시에 현실의 가혹함을 직시하고 극복해낼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요구할 것이다.
유례없는 불황이었던 지난해에도 선전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첨단기술과 독보적인 서비스로 시장을 장악한 기업도 있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힌트를 얻어 틈새를 비집고 시장을 개척한 기업도 있다.
올해도 경기침체로 투자가 정체되고 소비자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을 듯하다.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추구하는 가치소비가 확산되면서 이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전의 히트상품과 잘나가는 기업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들고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 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찍이 "호황은 좋다. 하지만 불황은 더 좋다"고 갈파했다. 무작정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지금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실패에 이를 수밖에 없는 대책 없는 절대긍정이 아니라 눈보라 휘몰아치는 혹한을 살아내려는 실천적 지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