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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세계화의 전제조건은 정부의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뒷받침이 선결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단순히 양방이냐 한방이냐는 시각으로 이익집단 끼리 이권다툼으로 본다면 1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한의약시장 진출의 희망은 없다.
그런 점에서 한방세계화에 대한 명확한 출발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동채 상근이사는 “한방세계화의 첫 걸음은 규격화와 한의사의 진출”이라고 말한다. 한약재 규격화와 더불어 한의사 해외진출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약재규격화는 한방이라는 분야가 막연한 상품이 아니라 인명을 다루는 의료라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의료인 해외진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의학계가 주창하는 한의사의 진출은 우선적으로 치료방법론의 해외 진출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중풍이나 뇌졸중 등 일반인들이 많이 앓는 만성질환의 경우 동서양 협진체제로 전환했을 때 우수한 치료효과와 상당한 수익모델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임상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의학이라는 분야가 수익이나 치료성과만으로 뿌리를 내릴 수 없고, 반드시 연구모델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공연구ㆍ교육기관의 설립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립한의대 설치가 반드시 따라야 하고,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협의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방세계화에 대한 필요성,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전대한의대 김수범 박사는 “한의학 세계화에 대한 당위성ㆍ필연성ㆍ불가피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의학의 현실과 현재의 여건, 세계화의 방향, 목적 등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실현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한방세계화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는 한의학의 역량을 수출하는 원심력을 갖추고, 국외에서는 한국의학을 수용하기 위해 교육ㆍ연구ㆍ학술 목적으로 들어오는 구심력을 동시에 확보케 해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의학계에서는 과학화ㆍ현대화ㆍ표준화ㆍ규격화는 한의학의 본질적인 가치의 승계와 발전에 바탕을 둔 상황에서 규격화가 목적이 아닌 한의학의 재해석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규격화ㆍ세계화를 위한 행정적인 틀은 상당히 거리가 멀다. 복지부에 한방정책관실이 있지만 기본적인 업무 외에 한방세계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거나 권한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한약을 전담하는 부서조차 마련돼 있지 않고 과학기술부 등 생명공학을 다루는 부처는 한의학계와 어깨동무를 하는 공감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비해 중국정부는 2005년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상륙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까지 중국정부가 어떤 요구를 해 올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정황으로 보아 몇 가지를 짐작할 수는 있다.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병ㆍ의원을 포함, 합작병원 및 의원에 대한 설립허용 요구이다. 중의사 면허를 포함해 중국의사 면허나 중국내 의사ㆍ치과의사ㆍ중의사 개업면허 소지자에 대한 한국내 진료허용 요구도 확실시 된다.
합작 한방병원 설립, 의원의 경우 100% 투자해 설립할 수 있도록 하며, 중의대를 졸업했거나 면허를 가진 중국 국민에게 한국내 면허취득과 진료허용 요구를 들고 나올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의 예상공세에 맞서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무대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ICOM(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개막식 전야제에서 행한 치사를 통해 한의학을 보다 경쟁력 있는 의학기술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중국ㆍ일본 등과 동양의학의 관계유지와 IT기술과의 접목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내놓은 것은 없다.
당시 복지부장관도 “정부는 물론, 한의학 분야의 민간단체, 연구기관, 학계 등이 힘을 합쳐 노력할 때 한의학의 세계화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중국이 세계 한의약시장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보고 수년 전부터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사안의 중요성마저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