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승 총재의 안이한 현실인식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내 산업공동화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국내 사양산업의 해외이전을 오히려 촉진시키고, 대신 남북경협을 활성화해 개성공단 등 북한지역으로 노동집약산업을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평소에도 한은 총재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을 자주해서 물의를 빚은 바가 있었는데 이번 발언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사양산업을 비교우위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그것은 중앙은행 총재가 얘기하지 않더라도 기업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고, 지금 그 속도와 규모가 커서 국가적인 걱정거리가 돼 있다. 박총재의 발언은 먼저 현실인식 면에서 문제가 있다. 지금 한국경제의 최대과제는 일자리 창출과 신용불량해소다. 사양산업을 붙잡아 둔다 해서 해소될 것은 아니로되, 해외이전을 촉진시킨다 해서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사양산업 문제는 근본적으로 제조업의 경쟁력 문제다. 경제강국이 강국인 이유는 제조업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양산업도 경쟁력을 갖추면 유망산업이 된다. 섬유나 신발산업처럼 한때 사양산업이라고 버림받았으나 기술개발을 통해 유망산업으로 재탄생한 실례도 많다. 사양산업을 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과 같은 일자리 창출이 국가적 과제가 돼 있는 처지에 사양산업이라 해서 외국으로 몰아내면 그만큼 국내 일자리도 줄어든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소득이 줄어 신용불량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양산업에 경쟁력을 부여하든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국내에서 생산활동을 함으로써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데 기여토록 하는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박총재의 현실인식은 매우 안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은이 얼마전 국내기업의의 해외이전으로 국내적으로 기업의 생산성과 고용이 높아졌다는 한가한 보고서를 낸 것과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남북경협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남한의 산업공동화에 대한 대안이 되는 문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과제이다. 남한기업의 대북진출은 북한에서 공장을 가동해서 안정적으로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정착기간을 거쳐야 한다. 현재와 같은 북한체제 아래에서 남한기업의 북한진출은 시험가동은 몰라도 본격적이고 대규모적인 투자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함은 물론이고, 그것도 그같이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는 것은 더욱 부적절하다. 제조업의 어려움을 이해하지는 못할 망정 사기를 떨어뜨리는 발언은 삼가 해야 한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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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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