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에 美 충격 겹쳐 "리먼 악몽 재연되나" 노심초사
[글로벌 금융쇼크] ■ 런던 금융가 가보니…불안은 해외변수 탓… 美·유로존 성토"한국은 자금 빼가기 가장 좋아" 경고도
런던=서정명기자 vicsjm@sed.co.kr
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에 있는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광장은 긴장감과 더불어 암운마저 감돌았다. 유럽 재정위기라는 시한폭탄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마당에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증시 패닉의 위기감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런던 시내 곳곳에서 차량 방화와 상가 약탈 행위마저 자행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카나리 워프는 신(新)금융지로 전통의 금융가인 '더 시티(The City)'와 더불어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런던을 상징하는 곳이다. 바클레이스ㆍHSBC 등 유럽 최대 은행들의 본부도 이 곳에 있다.
이들 글로벌 금융회사의 정문을 나서는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의 얼굴에도 시름이 가득했다. 대화 주제 역시 하나같이 '주식시장 패닉'이었고 '손절매'였다. 영국 FTSE100 지수는 7월28일 5873.21에서 8월8일 5246.99로 불과 8거래일 만에 804.26(13.7%)나 빠졌다. 2008년 10월 은행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 일주일 동안 1,000포인트나 급락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은 자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영국 경제 취약성이 아닌 해외 변수 때문이라며 미국과 유로존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면서도 2008년 금융위기 때의 리먼 악몽이 살아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을 케빈(34)이라고 소개한 인도계 펀드매니저는 "오전 내내 분위기가 침울했고 고객들은 손실을 봐도 괜찮으니 손절매해달라는 주문을 냈다. 시장 변동성이 증폭되면서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어버렸고 동료들 중에서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몰려오는 전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이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우리 증시에 대해 영국ㆍ미국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펀드매니저는 "한국은 자금을 빼가기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은 올 상반기만 한국 증시에서 5조원을 회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증시에서 두 번째로 큰손인 영국은 총투자액의 10% 이상을 상반기에 빼낸 이후에도 자금 빼가기를 지속하고 있다는 게 런던 카나리 워프의 증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드 뮤추얼에서 일하는 라지프(45)씨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미국의 재정 문제로 시장불안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우리가 한국에서 자금을 빼듯 미국도 자금회수를 본격화할 수 있으니 대비하라"고 귀띔했다. 미국계 자금이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 빼나간 돈은 8월 들어서만 7,000억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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