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비용 저효율 구조·엔저 가속으로 가격 경쟁력 상실

◎수출기상도 전업종 “흐림”우리나라 수출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올들어 수출이 두달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등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등으로 수출환경이 개선기미를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반도체 가격폭락으로 시작한 수출감소는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문제에다 미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의 오름세가 원화환율보다 더 빨라 국내 산업의 수출경쟁력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따라 수출부진세는 일반기계, 조선, 가전, 자동차 등 주력수출품인 중화학 제품으로 번지는 추세여서 수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주요 업종별로 수출부진 현황과 전망 등 수출기상도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전자/전자레인지·VCR 제자리 걸음/디자인 등 비가격경쟁력 강화 주력 업체별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4백13억달러(반도체포함)로 95년에 비해 5.2%의 마이너스성장을 한 데 이어 올해도 이를 반전시킬 만한 뚜렷한 호재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말 현재 9억4천5백만달러로 2.7%, LG전자와 대우전자도 10%가량 증가했다. 이는 지난 수년간 매년 30∼40%씩 급신장세를 보인 것에 비해 수출증가율이 뚝 떨어진 것이다. 품목별로 컬러TV, TFT­LCD(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 등과 냉장고, 세탁기 등의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레인지, VCR 등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예컨대 대우전자의 경우 2월말현재 전자레인지 수출은 4백3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겨우 2% 늘어나는데 그쳤다. 삼성전자도 VCR와 컴퓨터부문에서 부진했다. 이같은 현상은 엔저에 따른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과 채산성이 약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선진국시장에서 컬러TV와 모니터 등이 기존 중소형에서 대형으로, VCR는 차세대영상매체인 TFT­LCD로 각각 교체되기 시작, 수요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는 따라서 중남미 중국 동남아 등 전략시장을 중심으로 「스타상품」을 선정, 차별화된 마케팅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코스트 절감, 품질 및 디자인 등 비가격경쟁력 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자산업진흥회는 올해 전자수출은 지난해보다 9.9% 증가한 4백5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엔저가 가속화될 경우 이마저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이의춘> ◎반도체/16MD램 가격 10불선 회복 불구/수출액은 작년수준 그칠듯 16메가D램기준으로 한때 6달러선까지 폭락했던 반도체는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한국과 일본업체들의 재고조정을 위한 감산조치에 힘입어 최근들어서는 10달러선에 근접하고 있다. 삼성·현대·LG반도체 등 주요업체들은 가격이 회복되고 있지만 물량을 조절한 관계로 전체적인 수출액은 지난해와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업체들은 감산조치의 효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하반기 윈도95, 펜티엄프로·멀티미디어PC 등 신제품이 계속 선보이면 상황은 어느정도 호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 부회장은 『올해 우리나라 반도체수출액은 D램가격의 약세가 지속됨에 따라 지난해의 1백76억6천만달러보다 4.1% 늘어난 1백86억달러에 그쳐 전체수출에서 반도체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95년의 17.7%에서 지난해 13.7%로 하락한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더욱 줄어든 13.3%에 그칠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반도체경기가 이처럼 불투명함에 따라 국내업체들은 비메모리반도체,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조합한 복합칩 등 고부가가치제품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업체들은 또 수출증대를 위한 대책의 하나로 16메가D램 가운데 외부신호를 저장없이 즉시 처리할 수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SD램 등 고급품의 수출에 주력하고 반도체협회와 함께 운용중인 마케팅협의체를 통해 산업정보교류와 외국선진기업과의 전략적제휴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김희중> ◎자동차/올들어 전년비 20%나 줄어/135만대 목표달성도 불투명 『원절하의 효과가 엔저에 못미치는 데다 파업후유증, 고인건비 등으로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 또 미국의 빅3, 도요타 등이 우리의 주력시장인 소형차분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이동화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 올들어 자동차 수출이 두달연속 전년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했다. 근래없던 일이다. 지난 1월의 완성차 수출은 노사분규에 따른 생산차질로 4만2천1백64대에 그쳐 무려 47.9%가 감소했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4사의 2월수출실적은 9만1천1백37대로 전년동월의 9만4천5백18대 보다 3.7%가 감소, 두달연속 줄었다. 이에따라 2월까지 수출은 전년 보다 20%가 넘게 줄었다. 업계는 올 수출은 1백35만대로 지난해보다 10.5% 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으나 연초 상황으로 볼 때 이의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엔저에 따라 일제차의 경쟁력이 향상된 반면 국산차는 가격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 현대의 한 관계자는 『올들어 국산 자동차 가격은 전년보다 평균 10% 이상 인상됐으나 일제는 5%미만에 그쳐 동급모델에서 사실상 가격경쟁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제차판매는 올들어 미국시장에서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에 도요타는 5만6천9백52대를 수출, 무려 1백32%가 늘어났고 혼다도 34.5%나 늘어난 4만7백92대를 수출했으며 닛산, 미쓰비시, 마쓰다 등도 모두 증가했다. 그러나 국산차의 1월 대미수출은 8천55대로 지난해의 1만7천8백50대에 비해 절반 가량으로 급감했고 2월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한편 자동차 수출은 지난 95년 32.6%, 96년 23.7%가 증가하는 등 꾸준하게 증가해왔으나 올들어 두달연속 감소세를 보이는데다 내수마저 감소, 재고가 급증하는 등 근래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박원배> ◎유화/신장세 꾸준 유일한 “효자”/값오름세로 채산성 호전 기대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꾸준한 수출신장세를 보여 수지적자 해소에 효자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말 톤당 2백37달러선까지 치솟았던 나프타 국제가격은 이달들어 톤당 2백30달러선으로 떨어진 반면 바닥세를 면치 못했던 수출가격은 PVC(폴리염화비닐)가 지난해말 톤당 6백70달러선에서 지난달말에는 7백50달러로 12%가 뛰었고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는 톤당 8백90달러로 한달사이 1.7%가 오르는 등 합성수지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유화산업의 수출환경이 호전되고 있는 것은 연산 36만톤짜리 미국 다우케미컬사의 염소공장의 고장으로 공급부족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그동안 수출의존도가 높았던 중국 대신 중남미, 아프리카 지역 등으로의 수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전반적인 공급과잉으로 올해 침체국면을 예상했던 석유화학업계는 이같은 가격오름세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 수출액이 당초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채산성도 크게 호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올해 합성수지, 합섬원료, 합성고무 등 3대 주요품목의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8.7%가 늘어난 1천2백17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수출은 4백58만5천톤에 달해 지난해(3백54만톤)보다 29.4%가 늘어나는 높은 증가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같은 물량증가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업계의 장기수출전망은 아직 단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산업의 특성상 국제가격에 절대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직은 변수가 많다는 것이다.<민병호> ◎조선/올 수주량 일의 30% 그쳐/원가절감책 없어 “발만 동동” 지난해 국내조선업계의 수주량은 6백90만톤으로 일본의 1천50만톤에 비해 65% 수준에 그쳤다. 이같은 상황은 올들어서도 계속돼 1월말 기준으로 국내업계는 5척 23만톤으로 일본의 63만톤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수주잔량도 조선업계의 적정일감치 2년에 크게 부족하다. 1월말 현재 수주잔량은 1천3백만톤(건조능력 연간 8백만톤)으로 1년반치 일감에 그치고 있다. 한때 세계최고를 자랑하던 국내조선업계의 수주실적이 이처럼 부진한 것은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난 95년까지만해도 우리나라의 가격경쟁력을 1백으로 할 때 일본이 1백3∼1백5수준으로 우리가 유리했다. 그러나 엔저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황이 역전된데다 올 전망은 더욱 비관적이다. 일본은 엔저와 자체 원가절감노력으로 올해 가격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임금 및 금리상승 등으로 원가를 줄인다는 게 쉽지 않은 실정이다. 더욱이 유럽·미국 등의 오일메이저들이 원가가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해 국제입찰을 지연시키고 있다. 영국 BP사, 미국 모빌사와 마제스틱사 등이 이달이나 다음달중 VLCC건조 프로젝트를 발주할 예정인데 입찰에 참여할 현대·대우·삼성중공업 등 국내업체의 수주를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80년대 조선불황은 발주량자체가 감소한데 따른 것이었지만 현재는 발주량은 많은데도 불구하고 수주가 줄어들고 있다』며 『엔저로 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쫓기는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이용택> ◎기계/일본제품과 가격차 10% 내외/해외보다 ‘안방지키기’ 더 문제 일반기계부문도 엔저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다. 계속된 엔화약세로 일제와 경쟁을 벌이는 국산기계들은 해외시장에서 5∼10%의 가격인상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의 영향으로 업체마다 1·2월 당초목표에 크게 미달하는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일본제와 20%의 가격차이를 유지해 왔던 국산기계 가격이 엔저의 영향으로 10%내외로 가격차가 축소, 국산기계바이어들이 일제로 수입선을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크게 활기를 띠던 공작기계수출도 신장률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한국공작기계공업협회는 지난해 국내 공작기계수출실적은 지난 95년보다 58.4%나 크게 늘어나는 호조를 보였지만 올해는 신장률이 이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우중공업·현대정공·기아중공업 등 공작기계업체들도 큰 폭의 수출신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있다. 공작기계업체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값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일제와 경합을 벌여왔는데 엔화약세 지속으로 가격차이 효과가 상실돼 동남아 등 주요시장에 대한 수출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업체들은 이에따라 중남미·동유럽·아프리카 등 신시장개척과 함께 원가절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엔저파고를 넘기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수입측면에서도 일반 기계부문의 경우 완제품 및 핵심부품의 의존도가 높아 일시적으론 엔화약세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지만 대일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일본 기계업체들이 엔저를 바탕으로 가격을 인하할 경우 대일기계제품수입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게 업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이용택>

관련기사



이용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