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바일 동영상 솔루션업체 넥스트리밍의 서울 역삼동 본사에 낭보가 하나 날아들었다. 바로 미국의 최대 유료영화채널인 HBO가 넥스트리밍에 모바일영화 시청용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 멀티미디어 솔루션업체들을 제치고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클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다. 넥스트리밍은 일본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TV뱅크로부터도 모바일앱 개발을 수주하는 등 겹경사를 맞고 있다. 지난 2002년 벤처붐이 한창일 때 새롬기술에 몸담았던 임일택(사진) 대표 등 19명의 연구원들이 스핀오프(spin-off) 방식으로 만든 넥스트리밍은 모바일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 창업 3년만에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한창 잘나가던 회사였다. 하지만 코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이 국내 모바일 표준으로 채택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CDMA방식 모바일칩을 독점하고 있는 글로벌 칩셋업체 퀄컴이 국내 주요 휴대폰업체에 자체 솔루션을 끼워팔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판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에는 휴대폰업체 팬택까지 무너지자 모바일 동영상 솔루션업체들에게는 고난의 시기가 찾아왔다. 임 대표는 "당시 경영난에 몰려 1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떠안고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떨어질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며 "다행히 DMB시장 상용화에 빠르게 눈을 돌려 근근이 버텨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넥스트리밍은 당시 주변의 우려 속에서도 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퀄컴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이후 퀄컴에 2,732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지만 모바일 멀티미디어와 관련된 쟁점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안팎의 위기 속에서도 넥스트리밍은 좌절하지 않고 한발 앞선 모바일용 멀티미디어 기술력을 키우며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양한 방식의 동영상을 무리없이 재생해주는 강력한 기능과 휴대폰 성능에 맞춘 가벼운 용량은 서서히 글로벌 업체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주요 휴대폰제조사의 해외시장용 휴대폰에도 잇따라 납품이 성사됐다. 암흑기를 거치며 시장의 경쟁이 크게 줄어든 것도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임 대표는 "유럽 등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GSM방식 휴대폰에 넥스트리밍의 모바일 멀티미디어 솔루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되살아났다"며 "매출액도 2008년 35억원에서 지난해 125억원으로 불어났다"고 밝혔다. 한때 갈등국면을 겪었던 퀄컴과의 관계도 협력무드로 바뀌었다. 퀄컴은 지난해부터 3G기반의 스마트폰 중심으로 모바일 환경이 급변하자 자발적으로 애플리케이션 디지털신호처리(ADSP) 인터페이스를 공개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그동안 퀄컴칩 내부에 있는 동영상 처리장치(CPU)인 ADSP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개발과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임 대표는 "퀄컴의 정보공개로 강력한 하드웨어의 지원을 받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해졌다"며 "이에 대한 준비작업을 빠르게 진행해 10개월 내로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시장 선점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넥스트리밍은 이 같은 여세를 몰아 올해 증시 상장을 통해 외부자본을 유치하고 세계적 소프트웨어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질 계획이다. 이미 회사 직원들도 미국, 중국, 대만, 스페인 등 해외 출신이 전체의 10%를 차지할 만큼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연내 중국, 대만, 미국, 유럽에 해외사무소를 설립해 2년 안에 해외 매출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임 대표는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소프트웨어업체는 해외시장을 겨냥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며 "넥스트리밍을 미국의 SAS처럼 정년퇴직이 없고 자율적인 분위기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