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닫혔던 김우중의 입 '15년 울분' 토해내다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해체… '세계경영 열매' 외국에 다 뺏겼다"

김우중. 연합뉴스 자료사진




닫혔던 김우중의 입 '15년 울분' 토해내다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해체… '세계경영 열매' 외국에 다 뺏겼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김우중. 연합뉴스 자료사진
























통상적 수출금융 정책 요구를 정부서 '특혜'로 몰아 붙여김일성과 남북정상회담 추진 불구 김정일 반대로 무산故 노무현 대통령이 사면 해줬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야베트남서 젊은 국제비즈니스맨 양성에 대부분 시간 보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우그룹의 세계경영과 패망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신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책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역사는 '승자(勝者)의 역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패자(敗者)에게는 옳고 그름을 떠나 너무 쉽게 돌팔매질이 가해진다. 그 불균형의 추(錘)를 조금이라도 밀어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했다. '정사(正史)'를 되돌리자는 에필로그에도 그런 의지가 묻어난다. 김 전 회장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주요 내용을 김 전 회장의 인터뷰 중심으로 요약한다.

◇세계경영 열매 외국투자가 등이 다 가져가=(1990년대 초반부터) 한 20년 가까이 세계경제가 호황이었다. 그때 아시아만 잠깐 금융위기였을 뿐이지 (세계) 실물경제는 문제가 없었다. 관리들이 길게 보지 못했다. 우리가 세계경영 투자를 멈추지 않았으면 2000년대에 크게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나중에 대우계열사들이 다 좋아지지 않았나? 그 열매를 그 회사들을 인수한 외국투자가들이나 출자전환해 들어온 금융기관들이 다 갖고 간 거다.

그때 구조조정한다면서 우리가 외국에 자산 팔아서 손해 본 것이 얼마나 많으냐. 외국에서 압력을 넣더라도 정부가 이를 막았어야 했는데 되레 정부가 앞장서서 수출을 못 하게 하고 국내 자산을 헐값에 넘기게 만들었다.

◇김일성 주석과의 관계 및 남북정상회담 추진=김 주석과 인간적으로 가까워 한번은 평양에 있는 동명왕릉을 구경시켜줘 둘러본 적이 있다. 김 주석이 가족을 데리고 오라고 자꾸 그래서 와이프(정희자 여사)와 함께 갔다. 와이프가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금세 친해져 북한에 올 때마다 와이프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김 주석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든 잘 해보려고 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달랐다. 기본 철학이 달랐고 김 위원장 밑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구축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김 주석에게 김 위원장과 단둘이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해 김 위원장 사무실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남에게 손 벌리지 말고 우리끼리 하면 잘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는데 김 위원장은 남북대화에 반대했다. 김 주석은 하려고 했는데… 합의서를 하는 데 문제가 생기니까 김 주석이 화가 나서 한달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시위를 벌인 모양이다. 결국 다 OK해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에게 북한에 가시라고 권했다. 주변국들 동의를 받아서 하는 것은 절대 힘드니 일단 터뜨려놓고 수습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결정이 계속 지연돼 결국 성사가 못됐다.

◇GM과의 협상 깨진 적 없어=그때는 모든 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GM이 협상 깬다고 우리에게 통보한 적이 없었다. 이헌재씨가 그때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다가 회고록에서 뒤늦게 그렇게 말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우를 해체시킨 다음에 대우차를 거의 공짜로 GM에 넘겼는데 그 잘못을 가리려고 하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우차는 워낙 부실이었으니까 헐값에라도 빨리 GM에 넘기는 것이 국민경제에 좋았다 이런 얘기하려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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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정부의 기획해체=대우의 유동성 위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수출금융이 막혀서 16조원이 갑자기 필요해졌고 금융권이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3조원의 대출을 회수해간 것이 사태의 시작이다. 대우의 잘잘못과 관계없이 19조원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것이 왜 기업부실의 증거냐.

그 당시 우리가 수출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던 것에 대해 정부나 언론에서는 대우가 무슨 큰 특혜를 요구하는 듯이 얘기했는데 그게 절대 아니다. 통상적인 금융을 정상화해달라는 것이었다. 시스템이 고장 난 걸 고쳐달라는 것이 왜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냐.

또 밀어내기식 수출이었다면 현지법인에 과잉재고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워크아웃하고 삼일회계법인이 실사 나왔을 때 그런 것을 잡아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재고에 대해서 아무 얘기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대우와 삼성 간의 자동차 빅딜을 적극 밀었지만 경제관료들은 빅딜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대우와 김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대우그룹을 청산가치로 실사해 30조원이나 자산가치를 낮춰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었다.

◇23조원 추징금 판결과 사면,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2005년 4월 대우 사태와 관련해 임원들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났는데 예상한 것보다 너무 강해 모르는 척하고 밖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추징금 23조원의 액수도 그렇고, 재산도피라고 본 것도 그렇고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국내 자금을 해외법인으로 보낼 때 신고하지 않은 것, 해외 현지법인 차입금을 신고하지 않은 것 등을 전부 합산해 개인들이 외화를 불법반출한 걸로 잡아 추징금을 매겼다. 해외현지법인 차입금은 상환하고 다시 차입하며 롤오버를 했는데 차입금만 단순합산했다. 도박판에서 판돈 계산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말 퇴임 직전 사면을 해줘는 데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 다만 만날 일이 있을 때 친하게 얘기한 것뿐이다. 대우를 좋게 보고 내가 노조 탄압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대우조선 분규 때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노동자 측에 서서 제3자 개입을 해 우리 직원들에게 고발당했다. 그것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변호사 자격도 정지됐다. 그런데 우리가 옥포에서 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면서 호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옥포에 노사분규가 생기면 현장에 와서 중재해주기도 했다.

사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에서 부부동반으로 초청받아 한 시간가량 저녁을 같이 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봉화마을로 찾아갔다.

◇김 회장의 현 생활=베트남에 있는 국제비즈니스맨 양성소인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s)의 교장 겸 이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75%가량의 학생들이 한국 지방대 출신이다. 한국에서 충분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데 도전해보겠다고 온 친구들도 있다.

1·2기생들은 전원 취업해 여러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하노이와 호찌민에서 한 달에 각각 한 번씩 학생들을 만나 점심을 한다. 지금 하노이에 있는 3기생들도 내가 한 달에 두 번씩 만난다. 지금 70명을 교육시키고 있다. 오는 2015년 100명으로 늘리고 5년 내 500명까지 배출할 계획이다. 곧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미얀마에도 GYBM 과정을 만들려고 한다. 학생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서 교육비를 내면 크게 늘릴 수 있다. 또 취직한 사람의 급여 수준이 5만달러가 넘게 되면 버는 돈의 10%를 내서 창업지원기금을 쌓기로 했다. GYBM 백만 양병론이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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