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3월 6일]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 다 하라

아무리 어머니 연세가 많으셔도 모시고 산다기보다는 어머니 그늘 아래서 산다고 생각했었다. 올해로 구순이 되시는 어머니시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가 왔다. 걸어 다니던 성당도 차를 타게 됐고 공원을 몇 바퀴 돌던 것도 점점 줄더니 급기야는 심장수술까지 받게 됐다. 연세 드신 분이 있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있는 것과 같다. 하여 항상 관찰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감지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관찰과 감지로 중풍성 혈압이 터지기 일보 직전 병원을 갈 수 있었고 심장수술 또한 아주 위험한 시기 전에 병원에 도착해 무사할 수 있었다. 늙는다는 것은 측은한 것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체력이 약화됐고 행동반경도 줄며 주변 사람들과의 교분도 뜸해져 오직 관심이 같이 사는 식구에게 한정됐다. 내가 직장에 갔다 5분이라도 늦을라치면 휴대폰 단축키 5번을 누르신다. "어디냐?" 전화비가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시어 가장 간단하게 물으신다. 순간 짜증이 오르다가도 내가 어릴 적 학교에 갔다 집에 와 엄마가 없는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아무 데나 가방을 던져놓고 동네방네 엄마를 찾아 다니던 생각으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 왔어요" 한다. 또 노인들은 한 끼만 걸러도 금방 얼굴에 '나 기운 없어요'라고 나타난다. 그러나 어머니는 요즘 들어 매번 먹기 싫다고 하신다. "엄마" 하고 목소리가 커지다가 이번에도 옛일을 떠올린다. 예전에 늦잠을 자다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때는 버스 시간이 대충 아침 몇 시쯤이었다. 정류장은 동산에 있었다. 그곳이어야 멀리서 큰 언덕을 넘어오는 버스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엄마가 급히 밥을 김에 말아 간장을 들고 허겁지겁 나와 버스가 도착하는 동안에라도 내가 먹을 수 있게 하시던 생각에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한번 더 "엄마 진지 드세요" 한다. 간혹 짜증이 날 때 이처럼 엄마가 지금 하는 행동이 어릴 적 내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면 문제될 게 없다. 이렇듯 내가 지금 어머니께 하는 것보다 예전에 어머니가 나한테 베풀어준 것에 대해 새삼 울컥해짐을 느낀다. 늙는다는 것은 측은한 일이다. 자식들의 오라는 소리가 없으면 절대로 가지 않는 자존심 많은 노인이시다. 그러면서도 전화 한 통이 소화제보다, 비타민보다 더 나아 그것으로 생활의 활력을 되찾고 자신감이 생기셔서 즐거워하신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첫째, 절대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연세가 드셨다고 뒷방 노인네 취급을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집에서 가장 넓고 환한 방이 어머니 것이 됨은 물론이고 집안 대소사를 알려 드리는 정도라도 해야 한다. 둘째, 적당히 어깨를 세워 드린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가끔씩 대접해 아직도 힘이 있으심을 과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몸을 자주 주물러 드린다. 몸이 여기저기 아픈 관계로 약에 많이 의존하므로 소화가 안되거나 몸이 쑤신다고 할 때는 혈액순환을 도울 수 있도록 몸을 마사지해 소화제나 파스와 같은 효과를 주면서 스킨십을 하는 것이 좋다. 지금 안부전화 한통은 어떨지 넷째, 혼자 있게 해서는 안 된다. 혼자 있으면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고 소외감을 느껴 우울해진다. 다섯째, 간식을 준비해놓는다. 노인들이 아침을 먹고도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노망이 들었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기억력이 짱짱하시다. 하지만 허해하시곤 한다. 아마 진이 빠지고 식욕이 없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시로 조금씩이라도 드실 수 있는 음식을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늙으면 차츰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니까 가엾고 측은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힘과 뜻을 나눈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요즈음은 이 문구를 자주 되뇐다. 나 스스로에 대한 최면이다. 부모님께 잘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 지금 당장 안부전화라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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