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탐욕의 덫에 걸린 금융산업] 겉으론 사회공헌 속으론 금리 약탈

<상> 두 얼굴의 금융계<br>서민 위한 따뜻한 금융 연 수천억 쏟아붓지만<br>사망자에 신용카드 대출… 대출계약서 서명 위조도



#1. 사회공헌에서 금융계의 활동은 눈에 띈다. '새희망홀씨 대출' 등 서민을 위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청년창업자의 창업을 돕는 펀드도 결성했다. 지난해 은행들이 공을 들인 사회공헌 규모는 6,658억원으로 2010년보다 17.8%나 늘었다. 따뜻한 금융을 표방하는 금융계의 한 단면이다.

#2. 기준금리가 떨어지자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항목을 신설해 20조원의 추가 이익을 얻는가 하면 저학력을 이유로 들거나 5일만 연체해도 신용등급을 낮춰 한 푼의 이자라도 더 챙기는 게 금융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심지어 대출서류를 조작하고 사망자에게 신용카드를 발급ㆍ갱신하면서 119억원의 카드대출도 해줬다.


낮의 금융과 밤의 금융은 180도 다르다. 금융계는 해마다 수천억원을 사회공헌활동에 쏟아 부으면서 선한 모습을 한껏 자랑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자를 더 받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한다. 사회적 약자나 사망한 이들도 개의치 않는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자를 속이고 대출서류까지 조작하는 등 정해져 있는 목표수익을 위해 동원하는 방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감사원 관계자는 "탐욕스러운 금융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익 앞에 냉혈한이 되는 금융의 실상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꼬집었다.

◇물꼬 터지듯 드러나는 금융계의 탐욕=지난해 금융감독 당국은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나 약탈금리 등을 손보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불합리한 연체이자율을 낮추거나 예금담보대출의 가산금리도 조정하도록 했다. 또 중도상환수수료나 중도해지이율 등의 부과 관행도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틈은 여전히 많았다.


감사원 조사에서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떨어지자 가산금리를 임의로 인상하거나 항목을 신설해 수익이 악화되는 것을 차단했다. 예컨대 본점에서 소액 대출이라고 금리를 더 붙이고 만기 연장한다고 이자를 더 올리는 식으로 가산금리를 덧붙여 최근 3년간 20조4,000억원(기업 16조6,000억원, 가계 3조8,000억원)의 이자를 더 챙겼다. 또 은행 지점장이 재량으로 더하는 전결금리를 통해 3년간 1조550억원을 더 걷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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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태는 비단 은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용카드 업계는 이미 사망한 사람 명의로 2000년부터 2011년 6월까지 1,932명에게 신용카드를 신규·갱신 발급했다. 또 2008년 이후 사망자 1,391명에게 119억원의 신용카드 대출을 해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대출서류 조작도 연이어 터지고 있다. 대출계약 만기를 직원 임의로 조작해 논란을 일으켰던 국민은행은 대출계약서의 서명까지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출금도 당초 2,400만원에서 1억9,200만원으로 8배나 부풀려졌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이익을 높이기 위한 금융계의 어두운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적에 눈먼 금융계…금융산업 뿌리 흔들어=사면초가에 몰린 금융계는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조사도 받고 있다. 가산금리를 높이거나 신용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금융계가 금리 담합까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금융산업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설명이다. 때문인지 공정거래위원회는 예상보다 파문이 커지자 신중하면서 담합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CD금리 담합조사는 단순하게 실태조사의 양상은 아닌 듯싶다"며 "공정위가 담합에 대한 기획조사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태세"라고 말했다. 담합에 대한 뭔가 확실한 정황이나 증거를 가지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계 역시 "담합은 없다"고 강변하면서도 공정위의 조사 과정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CD 담합을 할 이유가 없지만 만약 일부라도 사실도 드러날 경우 한국금융산업은 못해도 10년은 후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에는 그만큼 위기감이 증폭돼 있는 형국이다. 특히 CD 담합이 밝혀질 경우 막대한 소송도 불가피하다. 금융소비자원은 "CD금리 조작으로 대출자들이 연간 1조6,000억원(2010년~2012년 6월)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집단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금융노조, 국정조사 요구=한솥밥을 먹고 있는 금융노조의 반응도 싸늘하다. 금융노조는 24일 CD금리 담합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금융노조는 "대출 소비자가 이번 CD금리 담합 의혹 사태의 최대 피해자"라며 "은행ㆍ증권사ㆍ금융투자협회 등 CD금리 결정구조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에 대한 국정조사와 금리적용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탐욕을 앞세운 금융산업의 행태도 꼬집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CD금리 담합 의혹이 터져나온 데 이어 저학력자에 대한 고금리 대출문제도 불거졌다. 금융권이 국민들로부터 '탐욕스런 금융자본'이라 지탄받는 것은 금융 당국이 금융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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