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한국 경제 위기는 내부에 있다

금융감독 대출 규제 확대는 내수경제 침체 악화시켜<br>과감한 추경예산 편성 등 경기진작 적극 나서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외부로부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리스크, 내부로 가계부채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사실 유로존 위기는 새삼스럽게 놀라며 과잉 반응할 이슈는 아니다. 이미 예견됐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언어ㆍ역사ㆍ문화가 다른 국가들을 재정, 정치적 통합 없이 통합화폐라는 하나의 울타리에 넣은 태생적, 구조적 한계를 가진 유로존 문제는 근본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갖가지 회의, 정상회담, 선거 결과 등을 기다리며 많은 투자자들은 무엇인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시장이 조금 안정을 되찾다가 또 다른 리스크가 튀어나오면 위기감이 다시 고조되는 현상이 반복될 뿐 결국에는 유로존 해체나 다름없는 결과가 전개될 것이다.


이 같은 외부 리스크는 우리가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 주어진 여건이다. 따라서 당황해 과민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세계 경제를 통찰력 있게 바라보며 또한 외부 요인의 위기 속에 따라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해야 한다. 유로존과 미국 경제 등으로 외부 시장이 줄어드는 어두운 점도 있지만 경쟁 상대인 선진국들과 기업들이 더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과 기업들에는 유리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외부 시장 감소 등 비슷한 우려들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한국 경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더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지금 한국 경제 위기의 문제는 외부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에 대한 경제와 금융정책 입안자들의 틀에 박힌 인식과 안이한 판단, 잘못된 처방책이 더 큰 원인이다. 내부 경제 상황의 근본 문제를 직시해 적절한 대응책으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들어서 가파르게 악화하는 가계부채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부동산 가격급락, 경기침체 등 내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정책 당국은 지난해 6월부터 가계부채의 고삐를 죄기 위해 1차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규제를 유도해왔고 그것도 모자라 올해 초에는 2차 대책으로 제2금융권의 대출규제책을 내놓았다.


가계부채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지금 와서 금융정책 당국이 연체율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에 대한 여러 가지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을 보면 마치 접시의 모래알을 뒤집어놓고 우왕좌왕 바쁘게 줍는 모양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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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가계들은 소비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서로 상품과 용역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가계 집단들이, 동시에 모두가 소비지출을 줄인다면 가계 스스로가 자신들을 영원히 부채 상환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같은 원리가 국가나 대륙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유로존의 나라들과 은행들이 과거의 과도한 차입으로 생긴 금융위기에 대한 과잉 반응으로 극심한 긴축으로 가고 있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에 위축된 금융기관들에 보수적으로 담보대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상환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가계에는 신용대출을 늘리도록 하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함에도 금융감독은 대출 규제를 확대함으로써 침체국면에 있는 내수 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든 셈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이르고 연체율이 오르니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이 긴장하고 주위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과다대출에 대한 과잉 반응으로 신용을 더 경색시키면 유럽과 미국 등 선례를 보더라도, 부채와 연체율의 증가를 억제하려다 더 극심한 대출부실과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고용창출-소비 증가-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성장 모델은 더 이상 한국에 통용되기 어렵다.

꽁꽁 얼어붙은 내수 경기는 첫 단추로 신용경색을 풀어 녹여가기 시작해야 된다. 그래서 소비가 늘고 고용창출이 돼 내수 경기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정부가 보다 과감하게 추경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최대한 늘려 경기진작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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