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새누리당 새 대표에 김무성] 친박 → 탈박 → 복박 이어 당권 장악까지… '마이웨이' 정치역정

■ 김무성, 그는 누구인가

YS때 입문 … 친박좌장으로 변신

박근혜 대통령과 이견에 멀어졌지만 18대 대선서 승리 이끌며 귀환

본격 '자기 정치' 광폭 행보… 개혁 내세우며 당심 잡아


새누리당의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한 김무성 신임 대표의 정치인생은 '끝없는 변신'으로 요약된다. 친박근혜계 좌장이었으나 계파를 떠난 뒤(탈박) 다시 돌아와(복박) 기어코 본인의 힘으로 집권여당의 대표 자리에 올라섰다.

그는 지난 2005년에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당시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웠지만 특유의 호방한 성격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친박계의 핵심으로 부각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2009년부터 박 대통령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원내대표 경선 출마 문제를 두고 박 대통령과 의견 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듬해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도 김 대표와 박 대통령은 뜻을 달리했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했지만 김 대표는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후에는 친이명박계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주류 친박계와 멀어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친박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심사 과정에서 물을 먹게 됐지만 고심 끝에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이후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당에 귀환했다. 캠프 전체에 금주령을 내리고 야전침대를 깔았다. 대선을 승리로 이끌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에 출마해 국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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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김 대표가 만든 의원모임인 '새누리당 근현대사 연구교실'에는 현역 국회의원 100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19명이 가입했다. 이어 결성한 '새누리당 통일경제교실'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는 '국회 퓨처라이프 포럼'이라는 복지정책 연구모임을 만드는 등 야권과의 교류에도 신경을 썼다. 당권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으며 광폭행보를 이어간 그에게 '김무성 대세론'이 따라붙었다.

그러다 친박계 '맏형' 격인 7선의 서청원 의원이 2013년 10·30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복귀하면서 대세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서 의원이 당권을 장악한 뒤 '박근혜 친정체제'가 굳혀질 것이라는 분석이 정치권 곳곳에서 제기됐다. 당 지도부 역시 주류 친박계 중심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김 대표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가 꺼내든 카드는 '마이웨이'였다. 상향식 공천제를 중심으로 한 공천권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할 말은 하는 집권여당을 만들겠다"고 부르짖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연이은 인사파동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은 '수평적 당청 관계'를 강조한 김 대표를 선택했다.

■ 그는…

△1951년 부산 △1971년 중동고 졸업 △1975년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1993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1994년 내무부 차관 △2005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10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 2013년 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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