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리뷰] '더 데빌'

'파우스트' 모티브 창작 록 뮤지컬

'대사 거의 없는 노래연기' 돋보여


"인생은 언제나 악마의 게임."

절망이 모든 것을 삼킨 날, 나약한 인간은 거미줄 같은 유혹에 결박당한다. 악마의 제안과 인간의 욕망이 만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건 어둠의 게임은 시작된다. 악마는 말한다. "잊지 말고 기억하라. 모든 건 너의 선택." 욕망과 파멸을 불러온 악마는 어쩌면 내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더 데빌은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3인극 창작 록 뮤지컬이다. 신의 경지를 꿈꿨던 파우스트 박사와 그에게 끊임없이 내면의 쾌락을 부추기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욕망에 잠식당한 파우스트로 인해 비극을 맞이하는 여인 그레첸. 고전 속 주인공들은 1987년 탐욕이 판치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다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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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증권 브로커 존 파우스트는 사랑하는 여인 그레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1987년 10월 19일 주가 대폭락(블랙먼데이)을 만나 모든 것을 잃는다. 어느 날 좌절한 파우스트 앞에 의문의 존재인 '엑스(X)'가 나타나 파격적인 거래를 제안하고,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만류에도 X와 손잡고 불법과 쾌락에 빠져든다.

기본 뼈대만 놓고 보면 더 데빌은 군살 없이 잘 빠졌다. 철골 구조물로 만든 단순한 계단식 무대와 수직으로 내리꽂은 철제기둥은 무대 자체를 냉혈한 탐욕의 공간이자 악마가 지배하는 감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방에서 그물처럼 내리꽂은 핀 조명은 유혹의 사슬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파우스트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중극장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영리한 무대 연출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4인조 록밴드가 연주하는 주요 넘버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압권은 앙상블 등장 없이(코러스 제외) 135분간 극을 끌어가는 3명의 배우다. 이들은 '혹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감정연기를 체력 소모가 큰 송 스루(대사가 거의 없고 노래로 처리)로 펼쳐 보인다.

날렵한 뼈대에 비해 그 안에 넣고자 했던 메시지가 방대하다는 점은 아쉽다. '도미니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디에스 이래 디에스 일라(진노의 날 슬픔의 날)' 등 라틴어를 비롯해 노래 가사 속에 반복 등장하는 성경구절까지. 대사와 노래 곳곳에 배치된 과한 은유는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 성폭행과 낙태 같은 자극적인 장면은 극의 흐름에서 동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11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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