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2월 9일] 좋은 아버지 되기

4형제 중 넷째인 나는 언제까지나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힘들 때면 의지할 수 있는 '막내 아들'로 살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세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가 돼 있다. 결혼이 늦었던 탓에 마흔에 얻은 첫 딸아이가 일곱 살, 두 살 터울의 둘째 딸, 그리고 이제 막 돌이 지난 막둥이 사내아이까지. 잠든 모습을 바라만 봐도 뿌듯한가 하면 딱 꼬집어 말할 이유도 없이 안타깝고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할까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다. 지난 1961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영화화돼 우리나라에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앨라배마주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핀치의 어린 딸 스카웃의 관점으로 전개된다. 핀치가 백인 여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흑인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편견으로부터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큰 줄기이다. 그가 로빈슨의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만 백인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은 유죄 평결을 내리고 절망한 로빈슨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도중에 도주하다 사살되고 만다. 처음 읽었을 때 '앵무새 죽이기'는 대부분의 독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당시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를 꼬집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된 후 나에게 '앵무새 죽이기'는 '아버지'로서의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는 자녀교육 지침서가 됐다. 마을 사람들의 비난에 맞서 흑인 로빈슨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핀치에게 딸 스카웃이 말한다. "아빠가 틀리셨는지도 모르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글쎄, 모든 사람은 자기가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그들의 의견은 존중해줘야 돼. 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보다 나 스스로 올바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변호사인 아버지가 일곱살짜리 딸아이와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 이런 대화로 아이는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 더 성장했을 것이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와 함께 있으면 마냥 신 나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하곤 하지만 아마 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를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여느 부모ㆍ자식들처럼 보이지 않는 서로의 보호막을 친 채 조금씩 대면대면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돼버리기 전에 편견 없이 양심에 따라 인간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헌신적인 아버지,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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