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예산 깎는 건 공개하고 증액 심사는 밀실서 하고

국회가 10일부터 부처별 예산심사를 시작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본격적인 증액·감액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376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 심사 과정을 주도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야 간사들은 "쪽지예산·호텔예산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이번에는 제대로 예산안 심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 약속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액예산 심사는 공개하기로 했으나 증액예산 심사는 간사에게 위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지난해 증액 심사 비공개가 '밀실 심의'라는 비판이 거세자 공개를 검토하기로 했다가 이번에 결국 없던 일로 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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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감액 심사는 국회의원들이 정부에서 마련한 예산안을 놓고 깎는 과정인 반면 증액 심사는 의원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예산을 추가하는 절차다. 생색 나는 부분은 공개하고 드러내기 싫은 사안은 밀실에서 결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여야는 증액 심사의 비공개 이유로 다음달 2일까지 예산안을 본회의에 보내야 하는 촉박한 심사기간을 들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예산 심의의 공개·비공개와 심사시간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2012년과 지난해 진행된 예결위 파행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두 차례 모두 예결위 간사가 예결위 회의장이 아닌 시내 모처 호텔이나 비공개 장소에서 만나 비밀리에 예산안을 조율한 뒤 나타났다. 대다수 의원들은 본회의 표결 10분 전에야 최종 확정된 예산안을 받아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예산안 증액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하지만 밀실 협상은 속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예산안조정소위 위원은 50억~100억원, 예결위 간사는 100억~300억원씩 예산을 챙겨간다는 말이 무성한 것 아닌가. 이래서는 나라 살림이 제대로 꾸려질 수 없다. 국회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따지기 전에 예산안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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