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노동시장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최근 세계경제가 심상치 않다. 장기정체론(secular stagnation)이 등장하는가 하면 디플레이션 공포를 이야기하는 경제전문가도 늘고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 가능성도 도사리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양적완화 경쟁을 벌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우리는 어떤가. 잠재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가 하면 저성장이 고착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산업인 제조업도 중국과 일본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더욱이 실업 문제도 심각하다. 공식 실업률은 3.2%지만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체감실업률은 10.1%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필자는 노동시장 개혁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세계경제에 언제 폭탄 터질지 몰라


유럽의 사례를 보자. 유럽연합(EU)은 지난 10년간 고용전략의 틀을 새로 마련했다. 규제에 의존해서는 일자리도 못 만들고 고용안정성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노동수요가 근로형태별로 다양하다는 점에 착안, 노동사용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해 노동유연성을 제고했다. 또 임금 등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도 도입해 비정규직 남용을 예방하고 노동시장 안정성도 꾀했다. 독일은 건설을 제외한 전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고 파견기간도 제한하지 않는 대신 파견근로자에게는 동등한 대우를 보장한다. 독일 등 유럽의 노동시장 개혁이 고용을 늘려 소득기반을 넓히고 경제활성화를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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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떤가. 노동법이 규제 일변도이다 보니 실업률 증가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법이 엄격해 한번 직원을 채용하면 거의 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신규채용을 주저한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정규직보호법은 오히려 근로자를 2년마다 일자리에서 내쫓는 비정규직해고법이 된 지 오래다. 비정규직 사용을 어렵게 만들면 비정규직 대신 정규직을 쓸 것이라는 순진하면서도 무책임한 발상에서 나온 부작용이다. 파견법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 법의 목적은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 이바지하고 인력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견근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유연한 형태의 노동력이라는 점을 무시한 채 파견근로의 사용기간·사유·업종을 규제한 결과 다른 비정규직에 비해 일자리 질이 양호한 파견직은 사라지고 사내도급 같은 일자리가 대신하고 있다. 근로관행도 문제다. 장시간 근로에 대한 과도한 할증률이 근로자들의 연장근로를 부추기고 있다. 일자리를 하나라도 만들어야 하는 국가적 상황에서 장시간 근로관행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의 정책은 노동사용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발전적 논의도 여의치 않다. 올 상반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 오랜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소위원회까지 구성, 노사정 간의 논의를 진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발의된 입법안 머리 맞대 풀어야

한술 더 떠 하반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아직 법안소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식물 상임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고용위축의 부작용을 국가경제 전반에 부담시키거나 고용 취약계층에 전가하는 등 이상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장외에서 여론몰이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발의된 입법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좀 더 발전적인 수정안도 제시해야 한다. 언제 세계경제에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노동법은 기업의 존립과 근로자, 나아가 우리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회나 노사정위원회도 허울 좋은 명분만 내세울 게 아니라 진정으로 노사가 상생하고 일자리를 찾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해답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러한 고민이 노동시장 개혁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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