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0년 12월10일, 매사추세츠 식민지가 7,000파운드어치의 지폐를 발행했다. 용도는 급여 지급. 캐나다 퀘벡 지역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 간 다툼인 윌리엄왕의 전쟁에 동원된 병사들에게 지불할 영국 돈이 부족하자 자체 지폐를 발행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화폐라기보다 약식 차용증서(IOUㆍI owe you). 급여를 곧 지불하겠다는 증서였다. 금이나 은 같은 준비금도 없었지만 이 차용증서는 곧 '매사추세츠 파운드'로 불렸다. 돈처럼 통용됐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1661년 구리와 은을 준비금으로 삼아 지폐를 발행한 적이 있지만 정부의 신용만으로 발행된 돈은 서구 최초에 해당된다. 돈이 돌고 경기가 좋아지자 다른 식민지 정부도 돈을 찍어냈다. 수입이 수출을 초과해 얼마 안 되는 금과 은마저 영국 등으로 하염없이 빠져나가던 상황에서 자체 화폐 발행은 돈가뭄을 한번에 해소해줬다. 모국인 영국에서 잉글랜드은행이 설립(1694년)되기도 전에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불태환지폐가 등장해 광범위하게 활용된 것이다. 문제는 마구잡이식 발행. 18세기 중반에 이르자 매사추세츠가 발행한 불태환지폐의 은에 대한 가치는 1대11의 비율로 떨어졌다. 아메리카 식민지 화폐의 급속한 평가절하로 손실을 본 영국 투자자들은 런던 의회에 식민지 화폐 발행을 금지시키라는 압력을 가했다. 미국인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독립전쟁으로 이어지는 1751년의 화폐조례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매사추세츠 파운드와 오늘날 달러는 닮은 꼴이다. 정부의 신용만으로 마구잡이로 발행되며 가치가 꾸준히 하락된다는 점이 비슷하다. 약식 차용증서도 최근 미국에 다시 등장했다. 재정고갈 속에 채권 발행도 쉽지 않을 정도로 신용이 떨어진 캘리포니아주의 연명수단이 IOU 발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