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고도 성장기에 우리 경제를 먹여 살렸던 수출 중심의 외발형 경제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수출품의 기술 수준과 부가가치 생산성을 수치화한 수출고도화지수를 보면 우리 경제의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의 수출고도화지수는 지난 1995년 0.80에서 2012년 1.48로 올라 일본(2.15→1.70)과 격차를 줄였다. 하지만 중국(0.05→0.96)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일본에는 못 미치고 중국에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수출을 견인해온 대기업이 부진을 겪고 있음에도 이를 대체할 마땅한 성장 엔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 엔화 약세까지 겹쳐 수출기업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양상이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LG전자·현대중공업·기아자동차·한화·현대모비스 등 8개사의 지난해 영업이익(1~9월)은 전년 대비 30%나 줄었다.
이에 이미 3% 중반까지 내려온 잠재성장률은 수년 내 2%대로 떨어지고 오는 2030년대에는 1%대로 고꾸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국내총생산(GDP)의 60%, 고용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내수의 역할을 더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외풍에 취약한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신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며 "특히 일자리와 소비 진작에 큰 영향을 주는 서비스와 중소기업 부문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 조로현상 심각…내수 역할 강화해야=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은 2만달러를 달성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3.1%를 기록했다. 이는 국민소득 4만달러 이상인 22개국이 2만달러에서 4만달러가 될 때까지 기록한 증가율 6.7%의 절반도 안 된다. 수출 주도로 경제를 키운 우리나라가 예전 선진국에 비해 더 빨리 성장 잠재력이 소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출의 경제성장기여도는 37.7%(2013년 기준)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20.1%)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내수중시 추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07년까지는 수출중심국의 성장률이 높았지만 2008~2012년 평균 성장률은 내수중심국이 3.4%로 수출중심국(2.6%)을 제쳤다. 내수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지만 음식업 등에 편중된 국내 서비스업은 여전히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1만6,558원(2013년 기준)으로 제조업의 47.3%에 불과하다. 서비스업의 부가가치 창출 비중도 59.1%(2013년 기준)로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가가치 비중(70.6%)보다 낮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 "독일이 '유럽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중소제조업이 강한 전통에다 서비스 등 내수산업까지 키워 내외수가 안정을 이뤘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산업을 재편해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규제개혁으로 자본·인재 활력 물꼬 터줘야=전문가들은 수출중심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는 경제를 만들려면 노동 및 규제 개혁을 통해 대기업에 묶인 자본과 인재가 활발히 이동하게끔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는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임금을 올려 경제를 살리려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기업이 스스로 투자에 나서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업그레이드되려면 전통산업에 매여 있던 자원들이 새 산업으로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며 "자원 흐름을 막는 칸막이를 없애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정서적으로 풀 수 있는 규제부터 손을 대야 한다"며 "특히 국회에 계류 중인 인수합병(M&A) 관련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이 활력을 찾는 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대책을 장단기로 나눠 세심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성장을 위한 기반은 다지되 당장 눈앞에 있는 성장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석 연구위원은 "실물을 실제로 끌어올리려면 불합리한 세제를 고치는 한편 의료·관광·바이오 등 고용창출 효과가 큰 분야의 규제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유능한 해외 과학자를 스카우트해 기업을 만드는 등 산업정책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