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에서 해킹 프로그램 RCS(Remote Control System)를 구매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다.
여당은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고 야당은 인권이 우선이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사실 안보와 인권이라는 개념은 우도 좌도,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둘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보편의 상식이다. 어느 한쪽이 더 옳다고 하기에는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다.
태평양 건너 우방국인 미국을 보자. 지난 2013년 미국이 각국 정상과 대사관·유엔본부까지 도청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의 폭로로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논란은 당시뿐 미국은 전 세계 감청정보 수집을 위해 10만명의 요원이 일하는 에셜론 프로그램을 여전히 운영한다. 또한 전 세계 첩보활동 비용의 60%를 사용하는 첩보 초강대국 위상은 굳건하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 자처하는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5,400만여대의 스마트폰이 보급됐다. 휴대폰 보유율은 92%로 만 6세 이상 국민 10명 중 9명이 휴대폰을 사용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아이러니하게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업체의 휴대폰 감청설비 의무화를 강제하지 않아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휴대폰을 이용한 강력 범죄와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테러가 발생하면 신속히 대처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해외 선진 정보기관들은 휴대폰에 대한 합법 감청을 1990년부터 일반화했다. 가장 먼저 미국이 1994년 통신감청지원법(CALEA)을 제정해 통신업체들의 감청설비 의무화를 강제하고 이를 어길 시 하루 최고 1만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하고 있다. 뒤이어 독일은 1996년 전기통신법, 일본은 1999년 통신감청법, 영국은 2000년 수사권규율법 등으로 통신업체의 감청설비 협조 의무를 법제화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민의 인권, 특히 사생활 보호에 소홀해도 좋다는 논리는 절대 아니다. 법의 틀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 안보와 대테러의 이름으로 인권이 무시되고 신공안정국 분위기에 젖어 국민의 자유권이 박탈당한다면 더더욱 위험스러운 일이다.
다만 적과 동맹국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대한 철저한 사찰과 감시를 통해 전 세계를 통제하는 '빅 브라더'로 군림하는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무조건 국정원의 감청활동을 반대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CCTV 도입 당시에도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은 CCTV가 없으면 수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잘 정착돼 활용되고 있다. 이제라도 서둘러 휴대폰 감청활동의 합법적인 길을 보장하되 감청의 오남용을 철저히 통제하고 처벌하는 '투 트랙' 방식으로 안보와 인권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다면 미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이다. h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