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나쁜 놈'을 변호할 권리

"도둑놈 변호인이 와 이리 많노. 콱 사형시키그라."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는 부산저축은행을 부실하게 만든 주요 임원들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날도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들은 변호인단을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지난 5월의 첫 공판 때처럼 무력 시위는 하지 않았지만 변호인단을 향해 뿜어대는 날선 눈빛과 살기어린 말은 당사자가 아닌 기자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같은 날 트위터도 시끄러웠다. 이른바'고대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의 피고인들이 거물급 변호사를 동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은 분노로 들끓었다. 특히 피고인 배모씨를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변호한다는 사실에 비난이 쏟아졌다. 즉각 "이 시대의 새로운 유전무죄"라는 의견이 트위터를 뒤덮었다. 결국 이날 신기남 전 의장은 법원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신기남, 돈에 팔려 몹쓸 놈을 변호했다'거나 '정치인 신기남에게 실망했다'는 트윗이 이어졌다.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을 방어할 권리, 헌법이 보장한 이 권리가 여론의 비난에 흔들리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나쁜 짓을 했다. 그러니 그들을 돕는 변호사에게 욕하는 것은 자유다"라고. 이 논리는 틀렸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행위에 대한 국가권력의 판단을 받지 못한 상태다. 구속이 됐지만 엄연히 미결수다. 하지만 이미 언론과 대중에게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은 너무 멀어졌다. 문제는 또 있다. 변호사 선임에 대한 비난이 사임계 제출과 같은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자유롭게 던지는 말도 모이면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곳 저곳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더 나아가 변호사의 변론권에 대해 고민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사법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좋은 변호사를 동원하면 무죄를 받는다'는 다수의 오해를 푼다면 지금의 논란은 해프닝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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