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

"기초과학도 사업화 가능… 과학벨트서 깜짝 성과 나올 것"




과학벨트 예산 1조7,000억 증액
기초과학 도약위해 필요한 결정
25개 연구단 지역 분산배치
국가 전체 발전에 한몫 할 것 '성실 실패' 용인하는 원천연구 추진
연구비 사용에 연구자 재량 확대
출연硏구조개편 큰 원칙 곧 마련
칸막이 허물고 협력체제 갖춰야
"1996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리처드 스몰리 미국 라이스대 교수는 이듬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기초과학과 비즈니스는 양 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한쪽 고리는 서로 닿아 있습니다. 기초과학 연구성과도 얼마든지 비즈니스화가 가능합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서는 기초과학연구원에서도 깜짝 놀랄 성과가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올 초 타계한 스몰리 교수는 축구공 모양의 탄소구조물인 '풀러렌'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뒤 동료들과 함께 '카본나노테크놀로지스(CNI)'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차세대 반도체 재료로 각광받고 있는 탄소나노튜브를 생산해 IBM 등에 공급하는 등 기초연구성과를 사업화하는 데 성공한 모델로 꼽힌다. 김도연(59ㆍ사진)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은 "기초과학을 가르치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는 노벨상 수상자를 76명이나 배출했지만 졸업생이 창업한 기업도 2만6,000여개나 된다"면서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나오는 성과를 사업화로 연결시키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 분산배치, 지역 균형 발전 위해 바람직=국과위원장은 약 15조원에 이르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75%를 배분ㆍ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다.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수장(首長)은 정부 R&D 예산의 3분의1에 달하는 5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과학벨트의 거점지구로 대전 대덕이 선정된 데 대해 "100점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이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며 "입지 선정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지역 간 과열 유치경쟁으로 거점지구에서 탈락한 주민들이 상처를 입었지만 많은 국민들이 과학벨트 입지 선정과정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당초 3조5,000억원이던 과학벨트 예산을 1조7,000억원이나 증액한 것은 거점지구에서 탈락한 지역을 배려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지적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역별 연합 캠퍼스 개념은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제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투자규모를 당초보다 늘린 것은 과학자로서 당연히 환영할 일이며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의 50개 연구단 중 25개를 대구ㆍ포항ㆍ울산ㆍ광주 등 전국에 분산배치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예를 들었다. 그는 "막스플랑크는 80여개의 연구소가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다. 과학 분야도 사회갈등이나 지역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국가 전체 발전을 위해 연구단을 분산배치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약 3,000명 정도로 운영될 기초과학연구원의 성공 여부는 국내외 우수 과학자를 얼마나 많이 유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김 위원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외국에서 몇 명 데려오겠다 등 정량적 목표보다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역량 있는 연구자를 초빙해야 한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를 유치해 연구의 수월성을 달성하려면 장기ㆍ모험형 주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수행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국제적 수준의 연구 몰입환경을 제공해 창의성을 극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구자의 연구비 사용 재량권 확대하고 자율성 강화해야=우리나라는 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 등 이른바 '돈이 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R&D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응용개발연구와 기초원천연구 간 불균형이 심하다. 근래 들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규모가 늘고 있지만 아직 정부 R&D 투자비 중 기초원천연구 비중은 35% 정도에 불과하다.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 국내에서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러한 불균형과 무관하지 않다. 김 위원장은 "과거에는 선진국을 빠르게 뒤쫓기 위해 응용연구를 강조했지만 선도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 지금은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면서 "관건은 어떤 기초연구 분야에 투자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인데 일단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하고 그 중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사람에게 집중 투자하면 된다"고 말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신진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기존에 시도된 적이 없고 성공할 경우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 대해 '성실실패'를 용인하는 기초원천연구를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응용연구에서 정부가 특정 분야를 육성하려다 실패한 것이 많습니다. '정부 부처에 관련 부서가 있으면 해당 R&D는 실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기초연구는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잘하는 분야를 더 지원하는 것이 맞습니다. 지역에 있는 대학이라도 본인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3,000만원씩 연구비를 지원하는 '풀뿌리연구사업'에서 많은 성과가 나온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지원되는 연구비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해 김 위원장은 "연구비 사용에 대한 연구자의 재량권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연구비 지원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미국 공군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10만달러짜리 수표를 집으로 보내왔습니다. 연구비를 어떻게 쓰는지는 알아서 하고 결과만 도출해달라고 했습니다. 돈을 대학 연구소에 갖다 놓고 우리 방식대로 사용했지만 이게 한국과 미국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경우 연구비 사용 항목이 수십 개에 이르고 항목을 벗어나면 한 푼도 못 쓰도록 돼 있습니다. 심지어 주말과 휴일에 나와서 일하는 제자들하고 식사도 못합니다. 이제는 정부나 연구자가 서로 신뢰하는 문화로 가야 합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담장 허물고 융합연구 나서야=국과위 조직 구성이 마무리되면서 과학기술계의 관심은 이제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구조개편에 쏠리고 있다. 국과위가 상설 행정위원회로 격상된 계기가 출연연 선진화 논의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등으로 나뉘어 있는 출연연 거버넌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국과위와 관련 부처 간 협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출연연발전민간위원회는 연구소들을 국과위 산하에 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관련 부처 간 이해관계 때문에 논의가 거의 진전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법률적 문제와 정서적 문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큰 원칙을 이른 시일 내에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교과부와 지경부가 부처 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잘 협조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출연연이 그동안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큰 몫을 담당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져 엄청난 예산을 쓰는 것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 과학기술을 관통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융합'"이라면서 "이 기술 저 기술 합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만들려면 연구소들도 전공ㆍ분야별로 운영되기보다는 칸막이와 담장을 허물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40년 가까이 공학자로 살아온 김 위원장은 갈수록 심화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넘어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언론에서 이공계 기피라는 말을 쓰지 말고 이공계 우수 인재 부족이라고 표현해달라"고 주문하며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예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GNI) 2만달러라는 '덫'에 수년째 걸려 있는 사이에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급부상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중국보다 산업기술에서 반 발짝만 앞서 있으면 엄청난 기회가 되지만 반 발짝 뒤처지면 그건 위기입니다. 과학기술계로 우수한 인재가 많이 와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처우문제와 사회적 인식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기 인재 양성을 위해 국가의 재정지원이 대폭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진국은 이공계 대학원생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데 반해 우리는 이공계 대학의 등록금이 다른 계열에 비해 더 비싸다"면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0.6%에 불과한 고등교육 투자예산을 선진국 수준인 1%까지 빨리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라믹 소재 분야 세계적인 석학
■김 위원장은
"행정감각·추진력 겸비" 평가… 학부시절 조정선수로 활약, 테니스 실력도 수준급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은 세라믹 소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세라믹 소재의 미세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세라믹 분야 학문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지난 2004년 세계세라믹아카데미(WAC)의 정회원이 됐다. 김 위원장은 아주대 공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할 당시 보직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연구와 후학 양성에 몰두했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행정가로 변신한 것은 2005년 서울대 공대 학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재직 당시 학장 선거 과열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간접선거제와 학장 외부 공채제를 도입하고 교수 정년 보장 기준을 강화하는 등 각종 개혁조치를 추진해 연구능력뿐 아니라 행정감각과 추진력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지면서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대 장관이 된 것도 '교육행정력을 겸비한 과학기술자'라는 조건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교과부 장관으로서는 단명(短命)했다. 김 장관과 교과부 관료들이 특별교부금을 출신 학교와 자녀의 학교에 지원한 사실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 장관직에서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장관 재직기간은 짧았지만 교육과 과학기술 부문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봉합하고 조직 융합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2008년 9월 울산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겨 2년여 동안 재임했다. 울산대 총장 시절에도 강의 인터넷 공개, 자발적 학생정원 감축, 교수 성과연봉제 도입 등 대학 경영에 '개방과 경쟁' 원칙을 적용해 화제를 모았다. 190㎝의 장신이지만 운동신경이 뛰어나 학부 시절에는 조정 선수로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땄고 테니스 실력도 선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공학한림원의 젊은 공학인상과 대한금속재료학회 학술상, 서울대 공대 훌륭한 교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과학기술훈장 진보장도 받았다. 저서로는 '우리 시대 기술혁명' '나는 신기한 물질을 만들고 싶다' 등이 있다. 약력 ▦1952년 서울 ▦서울대 재료공학과 ▦KAIST 공학석사 ▦프랑스 클레르몽페랑대 공학박사 ▦1979~1982년 아주대 공대 교수 ▦1982~2008년 서울대 공대 재료공학과 교수 ▦2005~2007년 서울대 공대 학장 ▦일본 도쿄대 펠로교수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008~2011년 울산대 총장 ▦대통령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ㆍ국가과학기술위원장
"구성원 융화 서두르자"… '화목한 데이' 시행
인력 45%가 민간 출신
공무원도 다양한 부처서 모여 화·목요일 他부서와 점심식사… 원활한 업무추진 등 도모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 3월28일에 공식 출범했다. 출범 두 달이 지났지만 조직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국장급인 과학기술정책국장과 심의관이 아직 공석이다. 차관급인 상임위원 두 자리를 비롯해 사무처장에 관료 출신이 임명돼 '공무원 중심 조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민간 전문가 비율을 대폭 늘려 공모절차를 밟느라 인선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직 구성이 늦어져 향후 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김도연 국과위원장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배분ㆍ조정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R&D가 한꺼번에 확확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체 예산일정에 맞춰 협의를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과위는 출범 이후 세 차례 본회의를 열어 양 중심의 외연적 투자에서 성과ㆍ효율에 기초한 질 중심의 전략적 투자로 전환하는 내용의 내년도 정부 R&D 투자방향을 심의ㆍ의결했다. 다음달 2일 열리는 4회 본회의에서는 민군기술협력특별위원회와 재난ㆍ재해지원과학기술특별위원회 구성ㆍ운영계획이 논의된다. 민군기술협력특별위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국방 R&D의 중요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민간과 군과의 협력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대형 국책과제를 포함한 민군 기술협력 사업 발굴 및 공동기획을 위해 구성된다. 재난ㆍ재해지원과학기술특별위는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구제역 등 각종 재난·재해에 대한 과학기술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조직된다. 재난관리 전략기술을 발굴하고 범 부처 재난ㆍ재해 관련 R&D 정책과 사업을 심의ㆍ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국과위는 전체 122명의 인력 중 45%가량이 민간 출신이다. 기존 공무원들도 기획재정부ㆍ교육과학기술부ㆍ지식경제부ㆍ서울시 등 다양한 부처에서 모였다. 그렇다 보니 원활한 업무추진을 위해서는 구성원 간 융화를 빨리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국과위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타 부서와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상견례와 업무파악을 하는 '화목(火木)한 데이'를 시행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의 공직 적응을 위해 업무배치 전 사전교육을 실시하고 멘토링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레일을 깔면서 달리려니 힘들다. 그래도 처음에 궤도를 똑바로 놓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제 조직이 궤도 위에 올라섰으니 힘차게 달리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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