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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SectionName(); [한국의 전문변호사] 노동 ② 주완 법무법인 광장 파트너 변호사 '노사정 상생'의 중재자로 맹활약대우그룹 노무담당으로 첫발… 3개단체 동시자문 '국내 유일'노사 신뢰관계 인식 제고위해 '고교때 노동법 조기교육' 주장 진영태기자 n othingman@sed.co.kr 주완 변호사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법무법인 광장의 주완(51·사시25회) 파트너 변호사는 노사정위원회 멤버인 한국노총(노동자)과 경영자총협회(사용자), 그리고 노동부(정부) 등 3개 단체를 동시에 자문하고 있는 유일한 변호사다. 노사정 가운데 한 곳만 자문하는 것도 어려운 데, 주 변호사는 이들 3개 단체를 넘나들면서 대립이 아닌 상생을 위한 중재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노사정 모두 자문…국내 1인자= 주 변호사가 이례적으로 노사정 모두를 자문하게 된 것은 현장경험에서 체득한 '상생'의 경험 때문이다. 2004년 7월 노사협상이 결렬된 A기업 노조는 기본급인상과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의 요구조건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안에도 포함되지 않자 파업을 선언했다. 이후 노조의 파업은 점차 격렬해졌고, 조합원 1,000여명 중 600여명이 회사의 징계대상에 올랐다. 불법파업 주동자로 경찰조사를 받은 '피의자'만 1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됐던 쌍용차 사태 못지 않았다. 결국 기업은 장기 파업여파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 변호사는 파업이 더 장기화되면 사측이나 노측 모두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양측 모두의 중재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 노사간 중재역할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파업장기화로 회사도 징계수위를 높이는 등 초강수로 맞서면서 사태는 더욱 꼬여만 갔다. 주 변호사는 "상생을 말자는 것이냐"며 노사 양측을 압박했다. 사측에는 노조가 가장 우려하는 징계대상 폭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설득했고, 노조측에는 무분규 선언을 하도록 유도해 나갔다. 결국 파업에 따른 책임은 노조가 지되 해고나 징계대상을 당초 100여명에서 20여명으로 대폭 낮췄다. 노조측도 무분규 선언을 발표했다. ◇직함만 13개 "노동분야 마당발"= 이때부터 주 변호사는 노와 사를 함께 아우르는 중재자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주 변호사는 "노동분야는 산재소송이나 해고무효 소송들도 중요하지만, 양측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상생할 수 있는 중재안으로 설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과 연세대 등 2개 대학에서 노동법을 강의하고 있다. 또 택시노조 등 노조측 자문은 물론 정부의 노동관련 자문·고문위원으로도 활약하며, 공식적인 직함만 13개에 달하는 '마당발'이다. 기업자문 수요까지 포함하면 주 변호사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노동자면 노동자, 사용자면 사용자, 그리고 정부와 학계까지 두루 경험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는 구심점이 된다"며 "노동자와 사용자 등을 항상 대립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를 문화로 생각하고 바르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노무일 직접 맡겨= 주 변호사는 대학에서 국제거래 분야 석사과정을 마칠 정도로 국제거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변호사가 된 후 곧바로 기업에 취직을 했다. 당시 세계경영으로 한껏 이름을 날리던 대우그룹이 그의 첫 직장이다. 자신의 국제거래 전공을 살려 해외에 진출하는 데 법률리스크를 확실하게 줄여 보겠다는 포부도 가졌다. 하지만 회사 경영기획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기업의 문제가 국제거래 미숙에서 발생하기 보다는, 노사간 갈등과 분열이 세계경영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1990년대 초반 당시는 민주화 분위기가 확산되던 때라 노동운동이 급진적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회분위기 때문에 노조는 노조대로 권리를 주장했고,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순순히 양보하려 하지 않다 보니 노동법은 도외시 한 채 서로의 권리만을 되풀이 해 주장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번지곤 했다. 한 예로 노조는 그동안 억눌려 온 데 대한 보상으로 툭하면 임금인상과 복지혜택 개선을 주장하며 아무런 절차적 정당성 없이 불법파업을 벌이기 일쑤였다. 기업 역시 노동자에게 노조보다 노사협의회 정도로만 모임을 구성하자고 회유하는 등 노동법에 금지해 온 불법적 요구를 당연한 것처럼 하기 일쑤였다. 양측 모두 잘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보다 못한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주 변호사에게 직접 노무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면서 노사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부탁했다. 주 변호사는 "당시에는 군사정권에 억압돼 있던 노동운동이 급작스럽게 권리를 되찾는 시기였지만, 급박한 변화로 수많은 불법과 탈법도 자행됐다"며 "사용자는 급격히 성장한 노조가 무서워 견제하기 바빴고, 노조집회는 그간 사용자나 정부의 좋지 않은 기억에만 매달려 불법적인 폭력시위로 변질돼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노동분야 일에 빠져들게 됐고, 2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파고 있다. ◇"고등학생에게도 노동법 강의해야"= 20년간 노동분야에서 활동한 국내 변호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다. 그만큼 인력풀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 같은 원인은 노동분야는 노사 양측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중재하는 역할이 만만찮은 데다, 기업들도 세무사, 회계사 등은 고용하지만 노무사나 노동전문 변호사는 따로 고용하지 않는 등 위상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노동분야 전문변호사인 주 변호사는 "노동분야만큼 미래가 밝은 분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해외 변호사들의 분야별 수익성을 보면 노동(노무)분야가 항상 3·4위를 차지한다"며 "사회가 더 발전할수록 개개인의 연봉협상에서부터 대기업의 노무관리분야까지 노동법이 더욱 더 중요해 질 것"이라 전망했다. 주 변호사는 "노동법은 항상 중요했던 데 반해 강조되진 않았고, 관련 교육도 부진했다"며 "기회가 된다면 대학은 물론, 고등학생들에게도 노동법을 가르쳐 장기적으로 노동법에 관한 올바른 인식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조기교육이 정착된다면 모든 국민에게 해당되는 취업에서 노동자 스스로는 물론 사용자로 스스로 신뢰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대립의 연속인 노사 모두를 자문할 정도로, '적이 없다'는 평을 듣는 주 변호사. 그가 오래전부터 꿈꿔 온 상생의 노사관계는 2010년을 막 넘은 오늘,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He is… ▦1959년 서울 용산 ▦1978년 동국대 부속고 졸업 ▦1983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3년 제 25회 사법시험 합격 ▦1986년 사법 연수원 제 15기 수료 ▦1989년 대우그룹 기조실 노무담당임원 ▦1991년 서울대 법학과 석사 졸업 ▦1995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1996년 현 노동부 자문 변호사 ▦1996년 현 한국경영자총협회 자문위원 ▦1997년 중앙노동위 심판담당 공익위원 ▦2000년 교육부 자문변호사 ▦2005년 현 한국노총 자문변호사 ▦2008년 현 법무법인 광장 파트너 변호사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의 분야별 전문변호사 만나보니…] 전체기사 보기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