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엔화가치 급락으로 수입물가가 오르자 채산성 악화를 겪게 된 현지 내수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다. 그나마 환율상승(엔화 절하)의 수혜자로 꼽혔던 수출업종은 기대 이하의 실적부진을 보이고 있으며 증시 호조도 반짝 상승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후반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가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경고음이 새삼 커졌다. 내수업체들이 주로 포진해 있는 중소업계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과도한 엔화 급락에 대한 성토가 터져나왔다. 일본의 4대 경제단체 중 하나인 경제동우회를 필두로 일본상공회의소·지방은행협회가 줄줄이 기자회견을 열고 엔저 경계론의 선봉에 나섰다.
엔저의 긍정적 효과가 기대 수준 이하라는 점도 아베노믹스를 옥죄고 있다. 내각부가 발표하는 일본의 수출수량지수는 지난 7월과 8월 연달아 감소세를 보였다. 수출수량지수는 2010년을 100으로 놓고 환산한 수치다. 증시에서는 최근의 주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투자자의 해외 이탈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인 마켓워치는 최근 주요 헤지펀드 매니저 등의 입을 빌려 증시의 큰손들이 일본 시장에서 손을 털고 미국 등으로 갈아타고 있는 상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최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후생연금펀드조차 최근에는 엔화 기반 자산(일본 국채 등) 중심의 자산운용 방식을 바꿔 비엔화 기반의 해외 주식 등으로 투자의 무게중심을 분산하려는 조짐을 보일 정도다.
아베노믹스 초창기의 엔저와 달리 현재의 엔저는 일본 통화금융당국의 통제 수준을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정부 초창기의 엔화가치 하락은 일본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용 양적완화를 실행하면서 파생되고 의도된 것이었다. 반면 근래의 엔저는 일본의 당국이 주도하기보다는 미국·유럽 중앙은행들의 통화금융정책에 휘둘린 결과라는 게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는 일본 스스로 엔저 흐름을 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다만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증폭되는 만큼 일본 금융통화당국이 최소한 속도조절 등을 통해 숨고르기에는 나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