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APEC 통상협상] "정책오판 있었나?"

지난달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임산물 및 수산물분야 통상협상에서 외교통상부의 정책적 오판이 있었는지 여부가 정부 내에서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이번 논란의 근원은 한국이 품목 대비 80-85%의 개방안을 내놓은데 비해 일본,중국, 타이완 등은 아예 개방을 거부하거나 12-40% 정도의 소폭 개방 입장을 전개,협상이 결렬된데 있다. 해양수산부, 산림청 등 유관 부처 일각에서는 외교부의 정책적 판단에 잘못이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했는가 하면 지난달 말 관계부처 실무자 회의에서는일부 참석자가 개방안 철회 가능성까지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 참가한 유관부처 한 당국자는 "외교부측이 그동안 부처간 실무 협의과정에서 한국이 대폭 개방안을 내면 일본이 개방에 동참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전망했다"며 "외교부측 전망을 믿고 대폭 개방안 작성에 동의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부가 일본, 중국의 동향을 잘못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며 협상카드를모두 공개한 바람에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부처 고위관계자는 "유관 부처간 충분한 협의를 거친 끝에 개방안을 확정했으나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다소 부족했다는 느낌이 든다"며 "철저히 일본, 중국 등의 입장을 살펴가며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협상 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 등 대미(對美) 통상협상에서도 외교부가 국민 여론을 덜 고려하고 개방에 앞서나간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는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에대해 외교부측은 일부 부처 인사들의 불만에 대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부처간 협의를 거쳐 확정한 방안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 외교부는 또 일본의 불참 가능성도 어느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정책적 오판이라는 지적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일본 등 경쟁국들이 우리 수준까지 개방폭을 확대하지 않으면 개방안을시행하지 않겠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농.어민 피해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외교부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외교부측은 또 수산물에서는 오징어, 명태, 갈치, 민어, 조기 등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농.어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대표 품목은 대부분 개방일정에서 뺐음을 강조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그동안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협상방식에 젖어있던 유관부처 관계자중 일부가 여전히 대외개방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신정부의 통상 정책은 과감한 개방을 통한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노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 입장을 대비해보면 결국 개방과 산업경쟁력 강화중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어느쪽 말이 맞는지는 당장 내년도 WTO 수산물 및 임산물협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경쟁국들이 자국산업 보호막을 그대로 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시장개방에 나설 경우 외교부의 이번 개방안은 그야말로 정책적 오판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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