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소비회복에 힘입어 3ㆍ4분기 중 성장률이 4%대로 올라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경기가 자생적으로 회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경기대책이 주효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국내 경제는 L자형정체 지속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상황이 그리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전환기의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고 회복세 지속을 위한 정책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新주도산업군 불확실성·위험 커
작금의 경제정책의 어려움을 몇 가지 시각에서 살펴보자. 우선 경기회복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거시정책의 확장 기조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경기침체와 감세조치로 세수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재정 지출을 필요로 하는 사회경제적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진 상황에서 국가 재정의 부실 누적은 자칫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회복이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데 세수 확보를 위해 증세를 하거나 재정을 긴축으로 선회하는 정책적 선택은 지난 9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 진입이라는 전철을 밟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견해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재정정책의 딜레마와 더불어 지금까지 금리정책의 효과는 경기 역행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이론적으로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투자가 촉진되고 가계소비가 늘어나야 한다. 우리의 경우 정책금리가 3% 초반까지 떨어지는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기업투자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업들은 저금리를 이용해 부채를 줄이고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고용 부진 등으로 가계소득은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저금리는 금융자산을 가진 가계들의 금융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더욱 제약하고 있다. 금리정책의 역발상도 고려하는 정책적 유연성이 필요한 때다.
정책 선택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새로운 정책 목표에 이르러서는 더욱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는 경제철학의 바탕 위에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 효과와는 별도로 진보냐 보수냐 하는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기 쉽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양극화와 소외계층의 증가로 인해 사회적 통합기반이 저해될 우려가 있어 재분배정책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재분배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
이에 관해 경제정책 자문으로 유명한 미 하버드대학의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실체가 없는 불평등(ineqality)과 싸우지 말고 실체를 알 수 있는 빈곤(poverty)과 싸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산업구조나 조직이 과거와는 현저히 달라져 산업정책이나 경쟁정책 역시 합리적 판단이 쉽지 않다.
정부, 정보수집 등 역할 강화해야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경제는 신기술ㆍ무형재화ㆍ인적자본 등에 의해 주도되는 산업군이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산업, 또는 경제의 균형 현상이 다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업조직이 우등산업(기업)군과 열등산업(기업)군으로 중첩화하고 부문간 단절 현상이 일어나면 산업연관관계의 약화를 초래해 소기의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새로운 주도산업군은 그 속성상 불확실성과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정책 당국이 그 파급 효과를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기술이나 재화에 관해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산업구조나 조직에 대한 정책을 펼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가 금융, 조세나 기업 규제와 같은 전통적인 정책수단에 의존하기보다는 정보의 수집ㆍ전파, 경쟁의 유인, 위험의 공유와 같은 새로운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