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의 위기는 안전자산을 수시로 변화시키고 있다. 유럽 위기 이전에는 미국 달러,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 미국 채권, 금이 안전자산으로 분류됐다. 유럽 위기 이후에는 금이나 원자재ㆍ곡물 등이 독보적인 안전자산이었다. 가격도 급등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달러, 엔화, 미국 채권, 독일 채권으로 안전자산이 바뀌었다. 전소영 한양증권 연구원은 "그리스나 스페인 등 유로존의 경제 상황, 그리고 미국의 경기흐름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에까지 많은 변화를 주면서 투자 대상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불황으로 돈이 달러에 몰리면서 금이 무조건적인 안전 투자 자산의 개념에서 멀어진 셈이다.
◇사라진 '골드 파티'…금 투자 상품 수익률 줄줄이 마이너스=지난해까지만 해도 금은 최고의 투자자산이었다. 자고 나면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금값은 뛰었고 사라졌던 골드뱅킹이 속속 다시 등장했다. 시중은행은 물론 증권사까지 나서서 '금에 투자하라'고 투자자를 유인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 금을 투자 자산에서 무조건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단기 수익률만 놓고 보면 탄식이 나올 정도다.
당장 금값 하락에 따라 금 관련 투자상품 수익률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골드뱅킹, 금 펀드, 금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금 펀드는 1주일 동안 5% 안팎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6개월 수익률이 -25%에 이를 정도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골드뱅킹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3개월 수익률은 -3~-5%, 6개월은 -10% 안팎이다. 골드뱅킹의 경우 시중은행이 지난해 자금유입을 위한 상당한 마케팅을 했다는 점에서 수익률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적지 않은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최근 잇따라 발행되는 금 관련 파생결합증권(DLS) 투자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대부분 금과 은 가격이 기준가격의 50% 내외로 하락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구조지만 최근 금값 변동성이 워낙 심해 수익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머쓱해진 한은=한국은행은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도 외환보유액 운용에서 금을 배제했다. 안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만큼 투기적 성향이 강한 금에 투자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금값이 치솟자 안팎에서 한은도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고 김중수 총재도 결국 금 투자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만 놓고 보면 한은의 선택은 실패였다. 물론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비약이지만 한은으로서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한은은 지난해 25톤은 온스당 1,540달러에, 15톤은 1,750달러에 매입했다. 지난 30일 현재 금 값이 온스당 1,565.70달러에 마감한 것을 감안할 때 15톤 구입분은 온스당 200달러가량 투자손실을 보고 있다.
◇달러화 가치 하락 없이는 금 값 상승 제한=금 값아 하락한 이유는 미국의 경기회복 가능성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컸다. 금은 달러화로만 거래가 이뤄진다. 달러화 이외의 화폐를 갖고 있을 경우 달러로 교환해 금을 매입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국채 수요가 몰리자 달러화의 강세가 이어졌고 달러화 이외의 화폐를 갖고 있는 투자자는 달러화 교환 비용이 커졌다. 금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다 달러화 가치가 더 올라가고 금값이 하락하자 더 큰 손실을 우려한 금 보유자들이 금을 파는 경우도 늘었다.
그렇다 보니 금의 비중도 축소하고 있다. 23억달러 상당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회사인 애서튼레인어드바이저스는 고객의 포트폴리오에서 금의 비중을 10%에서 5%로 축소했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올해 1ㆍ4분기 세계 금 수요는 5% 줄었다. 공급은 늘어나지만 수요가 줄면서 금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던 셈이다.
30일(현지시간)에는 금 값이 소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다른 안전자산보다는 상승세가 약했다. 이 역시 달러 강세 현상이 금값 상승을 억제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달러 역시 안전자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금값의 상승 탄력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얘기다. 결국 금 값 상승을 위해서는 달러가 다시 약세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달러화에 상관없이 금 값이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올해 꾸준하게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금 수요가 늘면서 가격 상승을 이끌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위기를 겪는 유럽 등의 국가가 부양책을 사용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금값이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3차 양적완화를 할 경우 금 값은 이내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오히려 지금이 금에 투자할 수 있는 적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