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반세기만에 가 본 금강산은 듣던대로 골짜기하나, 바위 하나, 폭포와 못 그 어느것도 빼놓을 수 없는 천하제일의 절경이었다.비단 실향민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 조차도 언제가는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금강산은 시인이라면 시로, 화가의 눈으로 보면 그림으로, 종교인이라면 수련의 장으로, 어떤 형태로든 경승지다운 맛을 그려 낼 수 있는 명산이었다.
그러나 절경을 이룬 그 하나 하나의 이름을 외우기는 쉬워도 금강산의 경치와아름다움을 말과 글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과연 금강산이었다. 일찍이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금강산 관광'은 지금도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비록 금강산의 모든 코스를 다 오른 것은 아니지만 관광기간 내내 벅차 오르는 감흥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금강산은 단지 자연경치가 빼어난 세계적인 명승지만은 아니었다.
북녘 땅을 밟는다는 설레임과 긴장으로 밤새 잠을 못이룬 실향민들이 장전항에 내리자 마자 감격에 겨워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이나 해금강에서 고향 입석리를 향해 제를 지내고 난뒤 '어머니'를 목메어 외치는 절규, 그리고 중학교 때 올랐던 구룡폭포를 보자마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내는 노인의 얼굴에서 감회가 새로웠다.
반면 장전항 출입국 사무소부터 외금강 탐승의 기점인 온정리 마을 끄트머리의도로 양편에 쳐 있던 2m 높이의 철조망은 군사분계선의 철조망보다 더 높게만 느껴졌다.
철조망 너머로 시멘트와 흙벽돌로 집을 짓는 모습이나 개울 둑 위로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는 정겨움에 가슴이 뭉클했으나 관광버스가 지나가자 한 초등학생이 재빨리 조그마한 바위 뒤로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파묻는 모습에서는 애처로움과 서글품이 교차했다.
사흘 동안 금강산 외금강의 으뜸가는 관광지역인 구룡폭포와 만물상, 삼일포ㆍ해만물상 등 3개 코스를 돌아보았다.
아쉽게도 산을 온통 물들였던 단풍이 모두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대신 속옷을 다 벗은 기암괴석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또 날씨 변덕이 심하다는 금강산도 지척에 두고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과 가슴에 묻어 두었던 실향민의 한을 단번에 풀어주고 싶어선지 연일 쾌청한 날씨였고 산속의 바람도 그리 세지 않았다.
옥류동, 연주담, 비봉폭포, 구룡폭포를 잇는 구룡폭포 코스는 기암절벽과 수정같은 맑은 물이 넋을 잃게 했다.
키돋움하듯 톱날처럼 뾰족뾰족 솟아있는 문필봉,관음연봉, 세존봉 등 수많은 봉우리와 만가지 모양의 기묘한 기암괴석들, 벼랑에서 쏟아져 내린 물이 다시 바위에부딪혀 미끄러져 무수한 폭포를 이루며 동해로 달음질쳐가는 변화무쌍한 계곡은 그야말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옥류동, 구룡폭포로 가는 길목인 '금강문'을 지나자 금강산 비경들이 한 굽이돌아갈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선녀들이 춤추고 놀았다는 무대바위는 옥류동의 절경을 마음껏 구경하라고 청하는 듯 했고 수정을 녹여서 쏟아 붓는 듯한 옥류폭포와그 아래로 넓고 긴 배 모양의 옥류담, 파란 구슬을 꿰어놓은 듯 가지런히 놓인 연주담, 139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바위벽면의 생김새에 따라 직류포, 누운 폭포,활포 등 여러가지 형태로 바뀌면서 길죽한 소반같은 봉황담으로 들어가는 비봉폭포등은 한폭의 그림같이 매혹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보는 이를 휘감아 빨아당길 것 같은 구룡폭포는 글자 그대로 압권이었다.
우리나라 3대 명폭답게 높이 74m의 높은 벼랑 위에서 쉼없이 떨어지는 도도한 폭포수는 구룡담을 거쳐 옥류동 계곡으로 기세좋게 내리닫고 있었다.
추운 날씨때문에 물안개가 일던 폭포 주변이 얼음기둥으로 변했지만 멀리에서나 가까이에서나보면 볼수록 장엄하고 웅대했다. 여름철의 구룡폭포를 상상만 해도 온몸이 움츠려진다.
만물상 코스는 층암절벽과 기암괴석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여러가지 모양을뽐내고 있었다.
만물상 입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거의 그칠새 없이 연달아나타나는 산수의 절경에 북녘 땅임을 잊고 어느새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온정리에서 버스를 타고 몇 백번이나 길을 꺽어 올랐는지 모른다.
육화암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니 3개의 바위를 나란히 세운듯한 삼선암은 전설 그대로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형상을 띠고 있었고 귀면암의 큰 바위들은 '귀신의 얼굴'을하고 있었다.
신선과 귀신이 정답게 마주보고 있는 듯한 삼선암과 귀면암의 조화에 감탄사를연발하다보니 어느새 나뭇꾼 총각이 도끼로 바위를 찍어 놓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절부암에 이르렀다.
만물상이 지척으로 느껴져 이마에 맺힌 구슬 땀이 눈아래로구를 새도 없이 천선대에 오르자 만물상은 글과 사진으로 보던대로 장관이었다.
만고풍상을 겪는 동안 기기묘묘하게 깎이고 다듬어진 천진봉, 천주봉과 천녀봉, 세지봉과 거기에 잇달린 수십개의 줄기에 옹긋종긋 늘어선 바위의 군상들이 손에 잡힐듯 바라 보였다.
봉우리들이 넘어져 쏟아져 내릴 것같은 환각때문에 오래 머물 수없었다.
온정리에서 동남쪽으로 자동차길로 12킬로 떨어진 삼일포. 옛날에 어떤 왕이 하루를 작정하고 놀러 왔다가 경치가 하도 좋아 3일 동안 놀고 갔다는 이곳의 호수풍경을 모두 옮기기에는 형용사가 모자라는 느낌이다.
36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는 삼일포는 잔잔하고 평온한 수면을거울삼아 못의 자태를 마음껏 물위에 펼쳐 보였다.
삼일포에 떠 있는 소나무 우거진와우섬과 단서암,사선정, 무선대 등의 작은 돌섬들은 호수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삼일포에서 동해로 약 4㎞ 되는 곳에 위치한 해금강은 말 그대로 금강산의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을 그대로 바다속으로 옮겨 놓은 듯 하다.
맑은 공기가 시원한 해풍을 타고와 온몸에 배어드는 기분이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했던 천하명산 금강산을 직접 오르내리면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속담과 금강산 관광이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초석임을 절실히 느꼈다.
아직도 삼일포의 봉래대에서 만난 삼일포 관리원 정길화(24)가 청아한 목소리로불러주던 노래 “반갑습니다”가 귓전을 맴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만나서 반갑습니다. 얼싸안고 좋아 웃음이요, 절싸안고 좋아 눈물일세, 어허허 어허허 닐리리아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