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 대책치고는 심사숙고한 흔적도 보인다. 우선 여름철에는 최초로 실시하는 대기업 강제 절전이 꽤 절묘한 대책이다. 효과는 좋고 국고는 안 들고 국민 반발이 덜하다. 대기업들만 피곤해지면 될 일이다. 지난해 기업 절전 보조금으로 4,000억원을 넘게 쓴 산업부는 올해 시어머니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대기업은 강제 절전으로, 중견ㆍ중소기업은 선택형 최대피크 요금제(CPP)와 수요관리제도에 편입시킨 것도 그렇다. 적어도 중소기업까지 괴롭히지는 않겠다는 명분은 확보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난에 피곤한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는 당근책도 내놓았다. 가정집에서 지난해보다 전기를 덜 쓰면 다음달 요금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여기저기 눈치를 많이 본 대책이다.
하지만 이 비상한 머리로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못 풀고 있으니 답답하다. 반년 전 사상 초유의 원전 위조부품 파동으로 그 고생을 해놓고 제대로 된 전수조사와 처방을 못해 결국 이 파국을 다시 맞았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그렇다. 지난 8년 동안 땅값 보상안 수정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더니 결국 주민들과 대립하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했고 문제해결마저 국회로 떠넘겼다. 전기요금 개편도 마찬가지. 시대변화에 맞춰 요금을 올렸어야 하는데 머뭇대다가 냉난방 수요만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요금인상을 못한 것이 물론 산업부 탓만은 아니라지만 여름철 냉방 수요는 이제 300만kW를 넘어 블랙아웃의 가장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큰 원인 중 하나는 님트(NIMTㆍNot in my term) 현상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고비를 넘기는 임기웅변만 뛰어나고 불과 수개월 후도 내다보지를 못한다. 산업부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올겨울, 내년 여름에도 또다시 똑똑한(?) 전력수급 대책에 감탄이나 해야 할 것 같다. seoulbir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