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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Hellenism)이 철학·미학·예술 등 서양의 정신세계와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다면 로마니즘(Romanism)은 서양의 사회제도 및 법제도, 공공시설·위생·토목 등 물질적이며 구체적인 인간의 삶과 관련이 깊습니다. 건축양식에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녹아들어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지난 19일 늦은 7시 노원구에 위치한 혜성여고 도서관에는 ‘현대건축의 뿌리, 서양건축사’를 주제로 한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강좌를 듣기위해 5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날 강의는 노원도서관에서 인근 중교등학교를 위해 마련한 것으로 혜성여고 건축동아리를 중심으로 건축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참석했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를 지낸 김원식(사진) OAS(Open Architecture School)교장은 대중강연이 처음이라는 말을 꺼내며 강의를 펼쳐나갔다.
“로마시대에는 대중을 위한 시설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야구장, 축구장 등 각종 경기장은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토대가 됐고, 로마의 도로체계는 오늘날 고속도로의 원조입니다. 그리스가 서양문명의 원류라면 로마시대에는 실용적, 물질적, 쾌락적, 오락적인 요소가 발달된 시대입니다.” 강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을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을 풀어나갔다. 고대 그리스 건축이 자연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했다면 고대 로마의 건축물은 이지적인 형태의 아름다움이 우선이었던 이유는 바로 철학적인 사고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건축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계보를 소개했다. 서양의 이성중심주의가 문화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해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문화는 크게 네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어요. 불명확성을 제거하라, 가능하면 최소 단위로 쪼개고 분석하라, 가장 작은 단위부터 가장 큰 단위까지를 종합하라, 그리고 목록을 만들어라. 이 네가지를 머리에 넣고 건축물을 보면 서양의 건축물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서양 건축의 기본이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 그리고 로마의 판테움, 콜로세움 등 고대 건축물의 사진과 도면을 비교하며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설명해 나갔다.
김 교수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고 전체적인 조형미가 우아하며 곡선으로 이루어져있고, 로마의 건축물은 이에 비해 미적 감각은 다소 떨어지지만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지를 세워나가면서 효율성을 중시하고 기계장치가 발달했다.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에는 아치(arch)구조가 대표적인데 아치구조는 평지에 높은 건물을 쌓아올릴 수 있는 혁신이었다”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양식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고 있다면 오늘날 건축물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수준의 강의에 다소 어려울 듯 했지만, 학생들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김 교수의 강의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까 필기를 하며 진지하게 빠져들었다. 이 학교 백제헌 사서교사는 “올해 만든 건축 동아리에서 큰 관심을 보여 노원도서관에 고인돌 강좌 개설을 부탁드렸다”며 “고인돌 같은 인문학 강좌는 교과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지식을 얻을 수 있어 학생들에게는 새롭다. 우리 학교에서는 외부 인문학 강의를 듣고 진로를 정하는 학생들도 있어 하고 싶은 공부를 찾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강좌는 1강 고대의 뿌리, 2강 중세와 근대의 뿌리, 3강 근현대의 뿌리, 4강 모더니즘 건축, 5강 현대건축의 동향 등으로 구성해 5주간 이어진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