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행되고 있는 금융시장 불안과 관련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한 적은 전혀 없고 나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며 정치권 등의 비판을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시장이나 전문가들의 지적은 다르다. 정부 정책이 일관성과 신뢰성을 잃으면서 금융불안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시장 간의 소통에 금이 가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정책 불확실성이 위기 증폭=재정부ㆍ금융위원회 등은 2일 “9월 금융위기설은 과장된 것” “단호하게 대처” 등 고강도 발언을 통해 전방위 수습에 나섰다. 3일에는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과도하다”며 “외환 수급사정은 중장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날도 환율은 급등세를 지속했고 1,200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을 시장에서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이나 경제의 기초체력 등을 감안하면 제2의 외환위기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사무소 폐쇄에 즈음하여’라는 사무소장 명의의 보도문에서 “현재 단기 외채 유입 성격이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는 크게 다르다”며 “관련 리스크가 과장되지 않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정책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금융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성장 중심에서 물가 안정으로 급선회한 뒤 최근 투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부양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금리ㆍ재정ㆍ환율 등 대부분의 정책이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위기설 조장=특히 9월 위기설에 대해 정부 원죄론조차 제기되고 있다. 7월만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재정부 장관,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등은 경쟁하듯 “3차 오일쇼크” “국난적 상황”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 등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쇠고기 정국에서 탈출해 주도권을 획득하고 초고유가 상황에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 불안감을 키웠다”며 “이제는 정부가 경제 위기설을 해명하기에 급급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책 불신은 기업 신뢰의 위기로 전염되고 있다. 금호ㆍSTXㆍ두산ㆍ코오롱ㆍ동부 등에 대한 유동성 위기설이 대표적이다. 주가 급락에다 각종 루머가 퍼지면서 ‘이러다 진짜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여러 투자촉진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대기업조차 현금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실정이다.
◇정책 당국 간에도 혼선=2일에는 정부가 환율 시장에 강도 높은 구두개입을 단행한 반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 상승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7월 이후 재정부와 한은의 공동 전선이 붕괴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면서 환율 급등을 부추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개발ㆍ재건축을 활성화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부랴부랴 건축경기 활성화라는 큰 틀을 강조했을 뿐 재개발ㆍ재건축 해제를 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한반도 대운하 추진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6월 대운하 추진에 대해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었다. 하지만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일 “요건이 조성되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며 불씨를 살려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과거 70ㆍ80년대식 경제운용에서 벗어나 정책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할 일과 시장이 할 일을 구분해 시장과 소통하는 한편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 선임연구원은 “대외변수 불안에다 가계부채 증가, 기업 실적 및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 등 내부 위험요인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 신뢰가 깨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