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교등급제 충격] 원인과 전망

엉터리 학생부·안하무인 대학·무사안일 교육행정에 원인<br>탈락수험생들 집단소송 가능성…중3 학부모 대책없어 '발동동'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뻥튀기한 학생부만 보고 어떻게 뽑으란 거냐".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내로라하는 국내 사학(私學)들이 수시모집에서 고교간 격차를 전형에 반영한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학원가와 일선학교에 그동안 파다하게 퍼져있던 "강남에 살지 않는 학생이 어느어느 대학에 지원하면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면접도 못보고 떨어진다더라.."하는 등의 `소문'이 `현실'로 드러난 것. 특히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대입전형이 학생 개인 능력이 아니라 출신 고교, 즉선배들의 진학실적이나 수능성적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균등하게 교육받을권리를 보장한 헌법정신을 훼손했다는 지적까지도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대학이 거들떠볼 가치를 못느낄 정도의 학생부를 제공한 고교와 교사,다양하고 공정한 전형방법을 개발하기보다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신입생을 뽑은 대학, 이런 사정은 전혀 모르고 `내신 위주 수시모집이 정착되고 있다'고 자평했던 교육부 모두 이번 사태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 이번 사태는 2002학년도 입시제도가 시행되면서 예견됐던 것. 학생의 특기와 적성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고교장 추천전형 등 다양한 유형의 특별전형이 도입되거나 확대되면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신뢰성과 고교간 학력격차문제가 첨예하게 떠올랐었다. 당시에도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는 엄격히 금지하는 `3불(不)' 원칙이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고교등급제 등에 대한 정의나 어느 선까지 고교간 특성을 전형에 반영하는 것을 허용할지 등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넘어간 게 화근이었던 셈이다. 결국 `고교별 특성있는 교육 프로그램 등을 내부자료로 축적해 사용할 수 있다'는 선에서 논쟁은 유야무야됐다. 또 수능성적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수시1학기 모집에서 내신조차 상대평가였던학생부 성적 기재방식을 절대평가로 바꿔 `내신 부풀리기'가 성행, 대학들이 전형요소로 삼을 만한 자료가 사실상 없게 된 점도 고교간 격차를 반영하도록 촉발한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 공청회를 위해 지방을 돌아다니다 대학 관계자로부터 `어떤 고교는 전교생이 100명이면 90명이 1등이고 `수'인데 어떻게 내신 위주 전형을 하라는 거냐'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전형방식을 전혀 고지하지 않은 채 외형적으로는 `학생부60%+서류평가 20%' 등으로 제시한 뒤 서류평가에서 특목고나 강남 소재 고교 출신과비강남이나 지방 소재 고교 출신의 점수를 눈에 띄게 달리 매겼다는 점에서 그 대학이 좋아 그 대학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볼 기대로 가득차 있던 수많은 수험생을 농락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평준화제도로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고교간 격차가반영된 것은 `교육 연좌제'에 다름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떻게 될까 = 탁월한 학생부 교과성적과 비교과 영역의 수상실적, 봉사활동등을 제출하고도 단지 `그들이 선호하는' 지역과 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접도 못보고 1단계 전형에서 탈락한 수험생들의 줄소송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고교간 차별을 뒀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학부모.교직단체 추천인사가 참가하는 방식의 본격 조사를 요구하고 1학기 수시모집 무효화 투쟁, 집단소송 등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학들은 `신뢰성 제로(0)'인 내신성적을 외면한 채 수능성적과 심층면접,논술 등 대학별 고사에 더욱 의존하면서 고교간 학력격차 인정, 본고사 부활, 수능성적 세분화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공방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서울대의 김완진 입학관리본부장도 최근 세미나에서 "3분의 1 정도의 학생은 본고사 형태의 시험도 과감하게 허용해 선발하도록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개별 고교의 특성에 대한 자료와 입학생의 학업성취도 자료를 축적해평가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고교별 특성을 요약한 표준적인 자료, 즉 설립연도 및 재적생, 위치,평가방법, 성적의 평균.표준편차, 대학진학 현황, 교과목의 내용과 종류, 특별한 교육이념, 평균 수능성적 등이 담긴 학교 프로필을 대학에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대학은 이와 함께 학생선발의 목표와 기준, 전형방법을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형태로 제시하는 등 선발 방법 개선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문제와 맞물려 수능-내신 9등급제 등을 통한 내신 위주 전형을 골자로 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공방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60여개 사회.시민.학부모.교원단체로 구성된 `고교등급제.본고사 부활 저지와올 바른 대입제도 수립을 위한 긴급대책위'는 "입시안 발표 일정을 중단하고 범국민적 논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들이 수시모집을 줄이고 좀더 변별력 있는 전형자료를 요구할 경우 2002학년도부터 정착시켜 나가고 있는 특별전형이나 수시모집은 위축되고10년전 입시제도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09학년도부터 시행하자는 것은 `내신 부풀리기' 를 1년 더하자는 것"이라며 "큰 방향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만큼 가급적 빨리 확정하는 게 혼란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서 11월초 실시되는 특목고 입학전형 등을 앞두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중3생들의 혼란은 극도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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