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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발 화끈한 내수부양 지원사격은 없었다. 세월호 사태로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일각에서 나왔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현 기준금리 2.5%도 분명히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수준이다. 기준금리 방향은 인상 쪽"이라고 못 박았다. 이 총재가 경기부양보다 물가안정에 초점을 둔 매파 본색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했다. 이로써 지난해 5월 논란 속에 0.25%포인트 낮춰진 기준금리는 1년째 2.5%를 유지하게 됐다. 이날 회의에는 금통위원 6명만 참석했다. 은행연합회가 임승태 전 금통위원 후임으로 추천한 함준호 연세대 교수가 아직 최종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위축 6월까지 갈 가능성=정부가 세월호 사태로 인한 긴급 내수부양책을 발표하는 날인 만큼 금통위에서도 당연히 내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지난 3월 중 소매판매는 휴대폰·승용차 등 내구재가 감소했지만 차량 연료 등 비내구재를 중심으로 전월 대비 1.6% 증가했다. 하지만 4월 들어 세월호 사태가 터지면서 백화점·대형마트·여행 관련 지표가 둔화 혹은 감소했다.
이 총재는 "세월호 이후 경기, 내수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단기간에 끝나는 시나리오, 조금 더 갈 경우를 상정해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소비위축이 한두 달이 아니고 2·4분기 내내 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저희들이 내수가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는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세월호 사태가 단기적으로 내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큰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다만 "지난달과 비교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기조 변화 등 대외 리스크는 약화된 반면 세월호 영향으로 국내 리스크는 좀 커졌다"고 평가했다.
◇"금리 방향은 인상 쪽…발권력 신중할 것"=한은이 최근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보고서를 잇따라 낸 것에 대해 이 총재는 이날 다시 한번 방향성을 확인해줬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2.5%는 경기회복세를 뒷받침하고 그 전제하에 올해 4% 성장, 내년 4.2% 성장을 제시한 것"이라며 "곧바로 인상을 논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은 인상 쪽"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 대신 내놓을 수 있는 카드인 금융중개지원대출(옛 총액한도대출) 한도 역시 확대하지 않았다. 대신 프로그램 간 한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이 총재는 "현재 집행되지 않은 부분을 좀 더 빨리 나가도록 하겠다"며 "정부의 기술금융활성화대책이 구체화하면 기술형 창업지원 프로그램 자금(3조원) 지원한도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요구에 따라 한은이 쉽게 발권력을 남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에는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답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와 달리 느긋한 한은이 정책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 총재는 "정부의 거시정책 기조와 통화정책 기조가 엇박자 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기인식에도 시각차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