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그동안 재계 일각에서 제기된 삼성SDS와의 합병설을 부인했다. 이에 따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후 1년 동안 진행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구도 정리 작업이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명진 삼성전자 IR담당 전무는 3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5 인베스터(투자자) 포럼'에서 "삼성전자와 삼성SDS 간의 인수합병(M&A) 계획은 전혀 없다"며 "이번 발표가 모든 루머를 없앨 수는 없지만 경영진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룹 차원에서 사실상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그 동안 그룹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른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전략을 구사해 왔다. 차후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시나리오 별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전략상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 전무가 기업설명회 자리에서 삼성SDS와의 합병설을 전면 부인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1단계가 마무리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삼성SDS 지분 11.25%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 지분은 거의 갖고 있지 않아 양사의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직접 보유 지분을 늘릴 것이란 전망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공식적으로 양사 합병은 없다고 공언한 만큼 이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을 팔아 향후 이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을 물려받을 때 증여세 자금으로 쓰는 방안이 유력하다"며 "또는 지주회사를 설립하더라도 이 자금이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최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이 당분간 조직 '헤쳐 모여'대신 내실 다지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삼성중공업과의 합병 연내 재추진에 대해 "(합병을)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만 올해 안에 굳이 추진할 이유가 없다"며 "현재로선 합병을 통한 시너지도 크지 않고 급히 합병을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9월 삼성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양사 주주들이 회사가 자신들의 주식을 매수하도록 요구한 규모(주식매수청구권)가 1조6,000억원에 이르자 자금 부담을 이유로 들며 두 달여 뒤에 합병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물론 삼성의 하드웨어 수술 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룹 안팎에서는 여전히 사업 모형이 비슷한 삼성전기·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의 3사간 합병, 또는 삼성디스플레이와 전자의 합병 가능성 등이 점쳐지고 있다.
계열사별 구조조정도 계속된다. 삼성전기가 비핵심 사업부분의 분사 또는 매각 작업을 벌이고 희망 퇴직을 벌이는 것 외에 다른 계열사들의 구조조정도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기·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의 합병 등은 사실 지배구조와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며 "당분간은 소규모 사업 정리 외에는 굵직한 인수합병 등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