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기로에 선 한국경제] <2> ㈜대한민국의 10가지 딜레마

"성장 복원력 상실하나"…위기감 확산<br>저성장속 분배논리 강조 소득격차 되레 늘어<br>설비투자 10년간 제자리 성장동력 위축 심화<br>산업구조 왜곡·저출산·사회통합은 해묵은 과제<br>재원마련·리더십 부재로 정책조합 한계 더문제



우리 경제가 깊은 트랩(함정)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비단 지표상으로 드러난 ‘내ㆍ외수 복합불황’에 대한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저성장의 그늘에서부터 산업구조의 왜곡, 중국 등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에 끼인 넛크래커 상황, 이를 해결할 정책조합의 구사 능력까지…. 현 상태로라면 성장 복원력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 증후군이 확산되는 조짐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잃어버린 3년’이란 개념 자체가 한가로운 진단”이라는 역설적인 분석을 내리고 “눈앞에 놓인 10가지의 함정들을 하루빨리 헤쳐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 그리고 분배의 함정=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면 ㈜한국호(號)는 이미 저성장의 트랩에 빠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 2003년 3.1%를 시작으로 2004년 4.7%, 2005년 4.0%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현 정권 동안 연평균 3.9%의 성장률에 그쳤다. ‘마(魔)의 4%’라고 하지만 실제 성장률은 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정부 목표대로 올해 5%를 이룩해도 평균 성장률은 4.2%에 머문다. 당장의 성장률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잠재성장률 수준이 4% 초반까지 떨어졌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잠재성장률을 4.8~5.2% 수준으로 보고 있지만 이미 저성장의 함정에 빠져버린 셈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경기가 반등할 수 있는 복원력이 떨어지면서 우리 경제가 4%의 트랩에 함몰돼 있다”며 “3만달러 시대를 준비하려면 과거와 같은 7~8%는 아니더라도 5~6% 정도의 성장률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저성장의 그늘에 휩싸인 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분배의 논리는 실행됐을까. 지표를 보면 저성장의 트랩 못지않게 분배 역시 덫에 걸려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분배의 기준점인 지니계수는 과거 김영삼(YS) 정부 당시 평균 0.280을 기록했지만 김대중(DJ) 정권 당시 0.310으로 악화된 데 이어 현 정부 들어서도 평균 0.310으로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지난 한해 동안만 따지면 0.320으로 도리어 나빠졌다. 분배의 또 다른 지표인 도시근로자 가구 5분위 배율(상위 20%와 하위 20%와의 소득 차이)을 보면 좀더 명확해진다. 2002년 5.18배였던 5분위 배율은 지난해 5.43배로 오히려 확대됐으며 지난 1ㆍ4분기에는 5.80배까지 커졌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 출범 3년 넘게 분배의 논리에 젖어 보냈지만 정작 분배는 찾지 못한 채 저성장 증후군에 빠져버렸다”고 일침을 가했다. ◇성장동력과 산업구조의 함정=우리 경제의 정작 위기는 성장률뿐 아니라 근본적인 성장동력에서부터 함정에 빠져 있다는 데 있다. 바닥에 머물고 있는 설비투자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해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총 78조2,000억원. 96년 77조8,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특히 2000년부터 2002년까지 10.7%에 달했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6%로 곤두박질쳤다. 이처럼 균열이 생긴 경제 현상은 산업구조의 왜곡이라는 또 하나의 함정으로 귀결됐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갈수록 오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80년 전체 GDP의 59.6%를 차지했던 서비스업 비중은 2000년 52.9%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내수침체와 함께 46.9%라는 참담한 실적으로 내려앉았다. 고용의 함정도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다. 빈 자리를 IT산업이 메웠지만 IT나 반도체는 시설투자 고도화 등으로 고용창출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10억원 투자시 신규 인력충원을 의미하는 고용유발계수는 반도체의 경우 90년 49.7명에서 2000년에는 4.5명으로 추락했고 정보통신도 31.8명에서 7.6명으로 내려앉았다. ◇규제의 함정=산업 부분의 이 같은 함정은 실상 규제의 트랩에서 비롯된 것이 크다. 정부는 해마다 규제완화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실상 규제건수를 보면 정부 의지가 공허한 메아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매년 9월을 기준으로 할 때 2001년 7,431건이었던 규제건수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7,871건으로 늘더니 올 9월에는 8,084건까지 급증했다. 국부를 갉아먹는 요인은 사회통합의 함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노사분규가 대표적. 현대차 파업이 올 7월 산업생산을 망쳐놓은 데서 볼 수 있듯 노사분규는 올 들어서도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은 올 들어 7월15일까지 31만9,122일로 전년동기보다 53.4%나 증가했다. 반면 파업 발생건수 대비 사태해결 비율은 47.6%에 불과해 전년동기의 75.3%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저출산ㆍ고령화는 해묵은 한국 사회의 과제가 됐다.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벌써 생산손실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의 경우 71년부터 80년까지 2.97%였던 것이 91년부터 2000년까지 1.26%까지 떨어지더니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평균 0.57%로 내려앉았다. 저출산의 함정이 저성장의 덫으로 고스란히 연결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정책조합과 리더십의 함정=정작 문제는 고질적인 함정들을 치유할 정책조합이 한계에 봉착해 있는 점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인위적인 경기부양 반대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한적 수준의 부양을 위한 정책조합 구사는 정부의 당연한 역할임에도 정부 스스로 ‘부양’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책조합을 구사하려 해도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재정의 경우 국가 채무가 97년 60조원에서 지난해 248조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나면서 밑천이 드러났다. 조세정책은 부동산 잡기와 증세 함정에 빠져 정책 기능을 사실상 실종했다. 설령 정책을 구사하고 싶어도 세제와 규제 등 중요 정책에서는 당의 딴죽 걸기가 심하다 보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재정경제부는 여전히 리더십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연ㆍ답보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교육과 의료ㆍ법률 등의 개방문제와 이념문제로 비화돼 사회적 갈등 양상으로 번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정책조합의 부재가 ‘개방의 함정’으로 연결된 일그러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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