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015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영어를 쉽게 출제해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한 후 논란이 거세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 등에서 영어몰입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등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위해 투입되는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아 이 같은 대책을 내놓았다고 밝혔지만 월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내고 영어유치원이나 영어몰입초등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단지 내 아이의 수능 영어시험을 잘 보게 하려는 게 목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에 들이는 과도한 시간과 돈·노력에 비해 효과적인 영어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능 영어를 쉽게 출제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교육부의 발상은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의 부모 세대는 10여년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도 외국인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경험이 다반사였다. 따라서 내 자녀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원어민과 두려움 없이 영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부모들의 욕구도 과잉 영어교육에 한몫을 차지한다. 여기에다 전세계가 빠르게 글로벌화되는 지금 대학에 입학해서도, 취업할 때도 우수한 영어실력은 무한경쟁의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1,500곳 이상에서 토익스피킹이나 오픽 등 영어말하기 시험을 채용 및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영어 쉽게 낸다고 사교육 줄지 않아
그런데도 교육부는 수능 영어시험을 쉽게 내면 사교육을 잡을 수 있다고 한가하게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더욱이 사교육을 잡기 위해 시험 문제를 쉽게 내겠다는 얘기뿐 어떻게 공교육을 정상화할지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사교육 의존도를 따지자면 영어보다 더 극심한 수학 관련 대책은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들이 영어 유치원 못지않게 많이 다니는 학원이 '사고력 수학'이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는 학원들이 "초등 4학년에 중학교 수학을 시작해도 늦다"며 학부모들을 두려움에 빠뜨린다. 고등학교 진학 후 이과를 원하는 중학생들은 입학 전까지 고교 1학년 이상의 과정을 선행학습 해놓지 않으면 이과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것이 엄마들 사이의 기본 개념이다. 수능시험에서 수험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도 영어가 아닌 수학이다. 이미 입시 시장에서는 영어의 변별력이 작아지고 상대적으로 수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영어보다 수학성적이 입시 성공의 관건'이라는 얘기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능 수학시험은 수학의 이해력이나 사고력 차원보다는 100분 내에 30문제를 다 풀 수 있는 속도를 가리는 시험이다 보니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려면 사교육이 필수다. 통계청 사교육비 조사(2012년)도 수학의 사교육 참여율이 47.8%로 영어의 46.3%보다 높게 나와 있다. 수험생들을 노리는 고액과외도 영어보다 수학이 훨씬 더 기승을 부린다. 수포자(수학포기자)냐 아니냐가 대학 입학을 가르는 기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은 그렇잖아도 한두 문제만 실수하면 등급이 달라지고 갈 수 있는 대학 간판이 바뀌는 불합리한 현실을 부추길 것이다. 상대평가인 수능시험의 특성상 영어 변별력을 떨어뜨리는 교육정책은 수학 등 다른 과목 사교육을 확대하는 풍선효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변별력 없는 시험은 학생들을 실수 안 하는 기계가 되도록 강요하게 만들고 실수한 학생들은 시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재수생·반수생만 더 늘어난다.
땜질식 처방 아닌 근본 대책 필요
학부모만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며 등골이 빠지는 악순환이 거듭될 뿐이다.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복지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이해당사자들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단기 성과에 급급한 한국적인 정치상황에서 합의가 거의 불가능한 이슈다.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근본적인 대책이 도입되지 않는 한 입시에서 난이도나 점수 배점변화 같은 땜질식 처방으로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입시혼란만 가중될 뿐 사교육이라는 폭주 기관차를 멈출 수 없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다 아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교육부만 모른다면 우리 교육부는 별에서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