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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시내 한 백화점의 식품관 매장.
길어지는 불황 탓에 대체로 조용하던 매장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중국ㆍ일본 등 해외 관광객이 주름잡던 식품관이 오랜만에 한국인들로 북적댔다. 추석 선물세트를 소개하는 카탈로그는 벌써 동났고 호객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졌다. 매장 중심부에는 약 50여명의 직원들이 배송ㆍ주문 상담 중이었는데 상담전화가 몰려 일부 직원은 직원용이 아닌 맞은편 고객용 의자에 앉아 일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문구가 실감나는 장면이 연출됐다.
◇저가 집중…'외화내빈' 선물세트 매장=하지만 떠들썩한 부산함의 속내는 좀 다른 듯했다. 백화점이 저가 세트 판매에 집중하는가 하면 업계의 기본인 '정가판매'마저 무너졌다. 백화점에서 정가 10만원선(2입) 와인세트 앞에 다가서자 직원은 '쿠폰상품'이라며 실제 가격은 5만원이라고 했다. 6만원선(2입) 와인세트 역시 3만원대로 팔았다.
차ㆍ양과 등 가공식품 매장은 5만~8만원이던 중심가격이 3만~5만원으로 내려갔다. 매장 직원들은 개별포장된 정품을 뜯어 무료 시식을 권하느라 바빴다. 2만원대 제품을 만지작거리자 직원은 가격표를 들추고 밑에 있던 6만원선의 가격을 보여주며 '할인상품'이라고 했다. "할인 표시 상품이 아니면 할인이 안 되냐"고 묻자 "물론 된다. 잘해드리겠다"며 제품별로 '숨어 있는' 할인율을 산정해줬다.
한우ㆍ굴비 등 고가 식품군 직원은 일단 15%의 할인율을 제시했다. 머뭇거리자 "많이 사면 생산업체 직매 형태로 줄 수 있다"며 즉석에서 할인율을 30~35%로 올렸다.
◇평소보다 더 썰렁한 패션 매장=올해는 추석이 예년보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찾아와 시기적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나마 살아난 소비가 선물세트에 집중되면서 패션 매장은 울상이다. 패션 매장 관계자는 "선선한 가을 날씨가 일찍 시작돼 기대가 컸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추석으로 쏠리면서 의류 신상품 장사에는 먹구름"이라고 토로했다. 한 백화점 명품관의 경우 매장 내 음악소리보다 고객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는 얘기가 오갈 정도다. 이날부터 대다수 패션 브랜드들이 10월 초 가을 정기세일을 앞두고 브랜드세일에 들어갔지만 매장은 썰렁한 편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패션이 살아나야 백화점 매출도 회복되는데 매출 비중이 15~20%인 식품 판매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혈경쟁으로 '반짝 특수'=당초 백화점들은 추석선물물량을 지난해보다 20%가량 늘리고 매출을 10%가량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저가 상품을 두 배 정도 늘리고 봄부터 물량 확보에 나서는 등 매출 진작에 힘썼다. 롯데백화점의 상품권 매출은 지난해 추석 전 같은 기간에 비해 30%가량 늘었고 신세계백화점은 물량이 적은 고가 정육ㆍ청과ㆍ갈치 세트 중에서 매진 상품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일단 팔고 보자'는 출혈 마케팅 전쟁으로 이익률 하락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확보한 저가 세트가 일찍 소진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선물 판매 신장률도 꺾이는 추세라 주요 백화점들은 추석선물의 실질 매출 성장률을 한자릿수로 내려잡은 상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개인 고객이 몰리는 이번주 말을 기대하고 있지만 9월 전체 매출 신장률은 전월 수준인 2~3%선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상품권 행사, 영업일수 확대 등을 통해 간신히 플러스 성장을 맞춘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