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억이 사라져도 나는 나

알츠하이머도 꺾지 못한 '내 삶'에 대한 의지… '스틸 앨리스' 30일 개봉


기억은 한 사람의 정체성 또는 자기 동일성(Identity)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기억만이 내가 '나'임을 비로소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경험과 기억을 몽땅 잃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더는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일까. 영화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성 앨리스(줄리언 무어 분)를 통해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해 답한다.


저명한 언어학 교수로 완벽한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앨리스는 아직 50세에 불과하던 어느 날,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내 일부가 조금씩 사라져 가는 느낌이야"라고 앨리스는 울부짖지만, 하루게 다르게 사라져가는 기억을 잡아둘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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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소멸을 지켜보는 경험은 괴롭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지성의 상징처럼 묘사되던 그는 간단한 단어조차 되뇌지 못하게 된다.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묻는가 하면, 화장실을 찾지 못해 바지에 오줌을 싸고, '오늘', '내일'과 같은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앨리스는 자신을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병에 고통받기보다 병과 싸우며 반평생 쌓아온 경험과 기억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예정된 실패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가 선명해진다.

아카데미가 인정한 줄리언 무어의 값진 연기를 통해 관객은 앨리스의 내면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야기가 정곡을 찔렀다'며 연출에 나선 고(故)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숨결도 느껴진다. 그는 '육체의 온전한 상실'을 가져다주는, 마치 알츠하이머의 양면과도 같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 지난달 숨졌다. 30일 개봉.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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