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 내놓은 예산안은 본 예산부터 큰 폭의 적자국채를 허용하면서도 재정지출은 소폭 늘리는 방향으로 꾸며져 있다. 성장동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서는 복지, 교육, 연구개발(R&D) 등의 수요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총지출 증가율이 6%대에 그친 점 등을 고려하면 정부의 주장대로 ‘팽창예산’으로 보기는 힘들다. 통합재정 수지 규모로 봐도 GDP 대비 0.3%인 2조2,000억원 흑자로 꽤 낙관적인 전망이다. 이 같은 점을 들어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통합재정수지가 GDP 1% 내외일 때는 경기중립적으로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수가 부족해 소주, LNG 세금 인상까지 검토하고 한전, 기업은행 등 공기업 주식매각까지 검토해 온 상황에서 이 정도 지출 확대조차 힘겹다. 늘어나는 국가채무는 더 고민거리로 작용한다. 씀씀이 내역을 보면 대부분 순수사업비보다 사회ㆍ복지, 남북관계 등에 치중한 모습이 역력하다. 우선 사회ㆍ복지 분야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0.8%(54조7,000억원)로 두자리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을 72%나 늘리고 육아지원도 52% 확대한다는 것. R&D예산도 15%나 늘었고 공공질서·통일·외교부문도 남북협력기금을 크게 늘리면서 13.8%나 늘었다. 그러나 R&D만큼이나 성장잠재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송·교통·수자원 등 SOC는 2.7%가 줄었다. 산업·중소기업 부문은 4.5% 증가에 그쳤다. 올해 예산증가가 사실상 마이너스였던점을 감안하면 이 분야 예산은 거의 늘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씀씀이의 효과도 문제지만 쓸 돈이 나올 곳은 여의치 않다는 점은 이번 예산안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본예산부터 벌써 9조원대라는 사상 초유의 ‘빚 잔치’를 예고해 놓았다. 이조차도 내년 세금이 더 잘 거둬지리라는 장밋빛 전망에 기댄 수치다. 게다가 정부의 2006년~2009년까지 전망을 보면 매년 7조~9조원 수준의 적자국채 발행이 예정돼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5년간은 나라살림이 빡빡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부족한 세수로 재정전망이 불안하다보니 불과 4개월전에 마련한 중장기 재정운용계획마저 매년 수정해야 할 판국이다. 각종 사회안전망 확충자금과 대북전력지원 비용 등 쓸 돈은 더욱 늘어가는데도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성장동력확충과 저출산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남북협력 등에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질 경우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조세 또는 국채발행 등 전략적인 재원선택이 불가피하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강조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이 국민에게 도움을 줄지, 부족한 돈을 메우고자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