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좋은 정부 vs 작은 정부

요즘 공무원들의 명함을 보면 보직타이틀이 너무 길어 외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개 담당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해놓다 보니 길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본부장ㆍ팀장 등과 같이 민간기업의 조직과 비슷한 경우도 많아 직급을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과거 과장ㆍ국장ㆍ차관ㆍ장관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단순한 조직과 보직에 비교하면 크게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오랫동안 추진해온 정부혁신의 산물이다. 정부 규모도 꽤 비대해졌다. 현재 중앙행정기구 수는 18부 4처 18청 7위원회 2실에 이르고 국무위원급 행정기관만도 19개나 된다. 적어도 행정기관의 수나 각료 수에 있어서 우리보다 큰 나라들인 일본이나 미국보다 많다. 대부분이 교사와 소방관들이라고는 하지만 공무원 수도 적잖이 늘어났다. 중앙정부만 커진 게 아니다. 각급 지방자치단체에다 정부예산보다 많은 예산 예산을 집행하는 300여개의 공공기관들까지 포함하면 국민경제에서 공공 부문의 비중과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나친 의욕이 낳는 정부비대화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시장론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정부와 공공 부문이 커지고 있는 것은 정부의 규모 자체보다는 ‘투명하고 일 잘하는 정부’를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정부역활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할 일이 많다는 전제하에 투명성이 전제된다면 정부가 커져도 상관없다는 ‘좋은 정부론’이 ‘큰 정부’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참여정부의 적극성은 지난 5년 새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2배를 넘는 51%에 이르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의 적정규모나 역할론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과거 개발연대에 다소 소홀했던 복지확충 등의 측면에서 정부의 할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또 상황변화에 따라 필요성이나 할 일이 없어진 조직들은 과감하게 줄이는 리스락춰링과 병행해서 필요한 조직과 공무원을 늘린다면 문제가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기능에 대한 구조조정이 없이 ‘좋은 정부면 커도 괜찮다’는 논리는 자칫 당초 의도와는 달리 ‘크고 비효율적인 정부’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정부도 수요와는 관계없이 영역과 권한을 키우려는 속성이 강한 조직이다. 집단이기주의 풍조가 팽배할수록 이런 성향은 강해진다. 효과적인 통제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는 의욕이 앞서다 보면 정부비대화와 함께 공급자 위주의 정부서비스를 과잉 생산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 또는 사회 전체의 편익향상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일들을 중앙정부ㆍ지자체ㆍ공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거나 민간자율에 맡겨두면 자연스레 해결될 사소한 문제들까지 침소봉대하거나 자가발전적 논리를 내세워 영역과 권한을 넓히려는 사례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보화와 세계화에 따라 국민의 의식 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데 여전히 가부장적 관료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않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설익거나 변덕스러운 정책 등으로 인해 혼란과 갈등이 증폭될 때는 너무 극성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21세기형 선진정부 모형 절실 정부 비대화가 문제가 되는 정부는 직접적인 생산조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적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억눌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대선 때마다 정부조직 개편은 공약의 단골 메뉴로 부각된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진흙탕 싸움이 메인 이벤트이다 보니 뜨거운 쟁점은 아니지만 잘 살펴보면 후보 나름대로 상이한 정부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초적인 질서유지만 챙기고 나머지는 민간자율에 맡기는 자유방임형에서부터 정부 또는 국가가 모든 것으로 통제하고 간섭하는 전제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부형태가 존재하고 성과도 천차만별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 바람직한 정부형태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형태에 따라 국가발전과 국민의 행복지수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이 가지고 있는 인적ㆍ물적자원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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