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고철 사재기 단속 서둘러야

지난달 하순. H철강사 직원들이 거래 대리점들을 예고 없이 방문했다.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철근을 매점매석하고 있는 대리점을 적발하기 위한 조사였다. 이날 조사에 동원됐던 직원은 “서울 지역 상당수 대리점엔 창고마다 철근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고 전했다. 철강 제품 사재기가 도를 넘고 있다. 최근 원자재 파동이 심화되면서 관련 제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자 중간 유통상들이 한 몫 챙겨보려는 속셈에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건설업계는 자재를 구하지 못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반면 철근을 만들어내는 철강사들은 철근이 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재기는 이제 철근의 주재료인 철스크랩(고철)으로 확대됐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전기로 업체에 공급되는 국내산 고철 물량이 지난달 중순보다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갑자기 이렇게 물량이 줄었다는 것은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다리는 유통상들이 고철을 야적장에 쌓아놓고 있다는 얘기다. 비정상적인 시장은 가격 체계까지 왜곡시켰다. 최근 국내산 고철 가격은 달러화로 톤당 485달러 수준. 국내산보다 품질 좋은 미국산 고철의 톤당 가격은 330달러(미국 내 거래가 기준). 미국산을 수입한다면 물류비 등을 모두 합해도 500달러가 안 넘는다. 기형적인 가격도 문제지만 당장 급한 것은 고철이 없어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전기로 업체의 한 관계자는 “고철의 적정 재고량이 평상시 대비 30~40%가량 줄어든 상태”라며 “수급이 더욱 악화될 경우 감산을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새 정부 출범을 즈음해 심화된 원자재 난이 장기적 경제 정책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작은 불씨부터 확실히 잡아야 한다. 철강시장이 교란되면 건설 등 관련업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급한 불부터 끄는 것이 일처리의 원칙. 시장이 자정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는 것이 순서다. 타이밍을 놓치면 불씨는 언제고 화마로 변한다는 자연법칙을 되새겨 사재기 단속을 서두를 시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