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첨단 무기들을 앞세운 이른바 `디지털 전` 전략에 총체적인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이라크전 전략 전술을 주도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의 당초 예상은 최첨단 정밀 장비로 대규모 초기 공습을 감행, 이라크 군 핵심부를 무력화시키고 별다른 지상전 없이 속전속결로 마무리하겠다는 것. 그러나 아군간의 오인 사격과 민간인 지역에 대한 오폭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다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이라크 게릴라군들이 미영 연합군의 지상군들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등 수십억달러를 호가하는 첨단 장비들을 무색케하고 있다.
미 시사주간 비즈니스위크 최신호(4월 7일자)는 이번 전쟁 결과에 따라 미국의 `군 현대화`전략 역시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전쟁 이후에도 하이테크 군사시설 수요 증가로 새로운 특수를 기대하고 있는 실리콘 밸리의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 질 수 있다고 잡지는 전했다.
당초 이번 전쟁에 앞서 럼스펠드가 구상했던 전략의 요지는 최첨단 장비들을 총동원, 이라크 군의 통신 시설을 마비시키고 적들의 교신을 차단하는 동시에 위성정보시스템(GPS)으로 핵심 군사시설만을 파괴해 인명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것.
전투기들내에 장착돼 있는 `TBCMS C2 에어 컴뱃 시스템`이 육해공군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해줄 뿐 아니라 공격대상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주기 때문에 대규모 지상군 병력이 필요치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구상에 대해 많은 지도급 군 장병들이 의구심을 나타냈지만 이미 아프간전을 승리로 이끈 럼스펠드는 이 같은 우려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전 발발 이후 10여 일이 지난 요즘 럼스펠드의 `첨단 전`시나리오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이 확산되고 있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미국의 무기 시스템은 엉뚱하게도 아군인 영국군의 전투기를 격추시켰는가 하면 이라크 민간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려 무고한 희생을 낳기도 했다.
미ㆍ영 연합군의 지상군 병력이 별다른 저항없이 바그다드로 진격, 수십일내에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접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장담과는 달리 연합군은 모래 폭풍과 산발적인 이라크 게릴라군의 기습 공격으로 별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회의론자들의 시각이 전적으로 옳은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전쟁이 첨단 장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자 하는 미군의 `현대화` 전략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 또 전세계가 미군의 첨단 군장비들의 성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쟁에서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향후 해외 수출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수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번 전쟁이 럼스펠드의 계획대로 대규모 인명피해 없이 단기전으로 마무리될 경우 미군의 현대화 행보가 가속화와 해외 수요 증가로 최근 3년간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미국의 테크놀로지 산업에 또 한번의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전황으로만 판단한다면 미 국방부와 실리콘 밸리의 `하이 테크 드림(High Tech Dream)`이 생각만큼 쉽게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미군의 현대화 전략이 빛을 보지 못할 경우 전체적인 미군 운영 계획에도 대폭적인 수정이 가해질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윤혜경기자 ligh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