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학수 부회장 조사후 검찰 수순은

본격수사 신호탄이냐 요식절차냐는 다음 행보에 달려

안기부ㆍ국정원 도청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9일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을 피고발인 등 자격으로 조사하면서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 수사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앞 길이 만만치 않아보인다. 검찰로서는 정(政)ㆍ경(經)ㆍ언(言) 유착을 고발한 언론보도를 계기로 이번 도청수사에 착수한 만큼 여론을 감안해서라도 참여연대가 고발한 삼성의 불법자금 제공의혹 수사에 소홀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불러 9시간 동안 조사했지만 삼성 관련 도청테이프를 입수한 재미교포 박인회(구속)씨로부터 협박을 받은 데 대한 조사에 걸린 시간을 빼면고발된 사안의 무게를 감안할 때 결코 장시간 조사한 것은 아닌 셈이다. 검찰은 조사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조사 시간으로 볼 때 1997년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한 의혹 등 도청테이프 내용에 해당하는부분에 대해 심도있는 추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부회장도 정관계 자금제공을 논의하는 자신과 홍석현 주미대사(당시 중앙일보 사장) 간 대화내용이 도청테이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테이프 내용이 모두 현실화한 일이라고 진술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말로만 자금제공을 논의했을 뿐 실제 집행은 되지않았다"고 피해가거나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했을 개연성도 없지 않기에 검찰의 조사는 변죽만 울리다 그친 게 아닌가 추측도 낳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 홍 대사와 이건희 삼성회장 등 다른 피고발인들도 필요할 경우소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그들 또한 도청의 피해자인 탓에 도청된 내용과 관련한 조사에 순순히 응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다. 검찰은 그뿐 아니라 도청테이프에 담긴 내용에 기초해 고발된 사건을 본격수사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결론도 아직 못내리고 있다. 보도내용을 근거로 본격수사를 하더라도 7년 전 발생한 금융거래 사실을 확인키위한 계좌추적 등 증거확보 작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고발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소환하더라도 7년 전 기억을 되살리기 어려울것으로 보여 진술을 통한 증거확보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은 아울러 재작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정경유착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밝히며 경종을 울렸던 만큼 그보다 5년 전에 일어난 또 하나의 `대선자금' 사건을 적극 수사하려 할지도 의문시된다. 삼성의 자금제공을 수사하면 1997년 당시 필경 있었을 다른 기업들의 대선자금제공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질 수 있어 검찰에는 여러모로 이사건이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결국 이 부회장 소환이 요식적인 절차에 그칠지, 본격수사의 신호탄이 될지는검찰의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 국정원 및 안기부 시절의 도청을 이번 사건의 양대 축으로삼고 수사를 진행 중이어서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는 쉽사리 감지되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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