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개인투자자)는 불쌍하다. 늘 뒷북만 치며 손해를 본다.
개미들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잃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내용이나 경제흐름 등을 무시하고, 정보를 쫒아 `사고 팔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또 주식이 선물투자와 같이 제로섬(Zero-Sum)게임 양상으로 변질되면서 개미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ㆍ기관 할 것 없이 데이트레이딩이 일반화되며 과거처럼 주가가 오를 때 같이 벌고, 내리면 같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한쪽의 손실을 요구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4개월 연속 상승했지만, 자살하는 개미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증권업협회 투자자보호실에 따르면 IMF(외환위기)이후 사회문제가 됐던 주식투자손실 비관 자살이 지난해 40여명에 이른다. 올해는 더욱 상황이 악화돼 7월말 현재 자살자가 30명을 넘어섰다.
윤태순 한화투신운용 대표이사는 “데이트레이딩으로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이익을 거두는 확률은 5% 이내”라며 “개인 투자자들도 이제 종목이 아닌 기업에 대해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에 `대박`은 없다=“하이닉스가 하이리스크라는 건 압니다. 그래도 하이닉스 만한 주식이 없습니다.”주식투자 경력 15년이라는 전업투자자 김선종(39)씨는 하루에도 하이닉스 주식을 수 십 차례 팔고 산다. 둔산 흑곰이란 별명답게 매매규모도 한번에 2억원 이상이다. 하지만 흑곰의 수익률은 겨우 8%내외에 머물고 있다. 올들어 지수가 저점대비 40% 이상 오른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전문가들은 하이닉스와 같이 변동성이 극심한 주식은 `마약`과 같다고 표현한다. 감자를 했음에도 4억주가 넘는 상장주식수에 4,000만주를 넘어서는 거대한 유동성은 언제든 치고 빠져 나올 수 있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KDS가 하이닉스와 같은 데이트레이딩 선호 종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장주식수 1억3,472만주의 절반이 넘는 7,500만주 이상이 하루에 거래된다. 공인중개사 서준원(43)씨는 얼마전부터 하이닉스에서 KDS로 말을 갈아탔다. 서씨는 데이트레이딩을 옹호한다. 매매성적표도 평균 이상이다. 하지만 자신의 매매가 `외줄타기`처럼 위험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저가주 위주로 2~3% 정도의 수익을 노리지만, 시장이 상승이나 하락으로 방향을 잡을 때는 매매손실에다 수수료까지 겹쳐 부담스럽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지민 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는 “주가 움직임보다 투자자의 감정이 더 빠르게 움직이면 데이트레딩에 중독된 것”이라며 “주식 투자자라면 시세판에서 한발 떨어지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미들이 수렁으로 빠지는 또하나의 이유는 빚이다. 주식투자를 위해 감당하기 힘든 많은 빚을 내 주식투자를 하는 개미들이 많다. 주식을 마치 `부자 아빠로 가는 엘리베이터`쯤으로 여기며 한방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심리다.
김경원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빚을 무서워 하지 않는 심리와 로또 열풍으로 대변되는 정부의 대박 정책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변신하는 데이트레이더=데이트레이딩으로 재미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데이트레이더들이 변신에 나서고 있다.
데이트레이딩 전문사이트를 운영하는 권효열(42세)씨는 “1~2년새 회원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데이트레이더들이 중ㆍ장기 투자자로 변신하거나, 아예 변동성이 큰 선물ㆍ옵션 시장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중장기 투자자로 변신한 데이트레이더들은 투자패턴이 바뀌면서 생활도 달라졌다.
20년째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는 표영철(56)씨는 얼마전부터 점심약속은 가급적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잡는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자리를 뜨지를 못해 점심을 햄버거로 때웠었다. 표씨는 데이트레이딩에 매달려 봤지만, 수익이 신통치 않게 나오자 데이트레이딩를 포기한 경우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주식을 사고 팔아 수익률을 올리긴 했지만, 연간 수익률에서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선물ㆍ옵션시장에 뛰어든 데이트레이더들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분단위에서 초단위로 투자결정 시간이 빨라지면서 `도 아니면 모` 방식을 통한 새로운 엘도라도를 찾고 있다. 하지만 기관이나 외국인이 선물ㆍ옵션시장을 현물시장의 헤지수단으로 이용하는데 반해 개미들은 차액을 노리고 거래하기 때문에 선물ㆍ옵션시장에서 돈을 딸 가능성이 주식시장 보다 훨씬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주식투자 실패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물시장 보다는 선물ㆍ옵션 시장에서 깨진 경우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데이트레이딩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증거금제도를 이용, 주식을 산 뒤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아 매수대금을 충당하는 이른바 미수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무임승차(Free Riding)`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또 이 규정을 어겼을 경우엔 90일 동안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김현수기자 h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