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코리아시대] 10년 시간의 벽 뛰어넘어… 세계가 놀란 '日추월 드라마'
개발서 성능·마케팅까지 차별화 전략이 일등공신고유가로 시장규모 커지는 중대형 2차전지도 정조준
김상용기자 kimi@sed.co.kr
김현상기자 kim0123@sed.co.kr
#지난 1999년 삼성SDI는 리튬이온 2차전지 양산을 1년여 앞두고 첫 양산 제품으로 2,000㎃h용량의 제품을 결정했다. 당시는 신제품이 1,600㎃h 제품이고 일본에서도 1,800㎃h 제품 개발을 시작했을 때여서 시장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삼성SDI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기존 일본 업체들이 선점한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후발주자로서 획기적인 신제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성SDI에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기를 무려 1만번. 삼성SDI는 드디어 못으로 2차전지를 관통케 하는 '관통 테스트'에 성공해 시장에 첫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고 2000년 7월에는 세계 최고 용량의 2차전지 양산에 들어가면서 전세계 2차전지 시장에 화려하게 진입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2011년, 삼성SDI는 2년 연속 소형 2차전지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수성하는 결실을 맺었다.
#LG화학이 미래 핵심사업으로 전지사업을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일본에 전량 의존하던 2차전지의 국산화를 위해 개발에 뛰어든 LG화학은 1998년 국내 최초로 소형 2차전지 양산에 성공하며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사업 초기 LG화학은 품질 문제와 세계적 공급과잉이 겹치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LG화학은 품질개선과 고객확보를 위한 영업ㆍ마케팅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또 LG화학은 2차전지 생산량을 크게 늘려 고객 대응력을 높이고 품질 수준도 개선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또 2008년에는 숙원이던 세계 최대 휴대폰업체 노키아ㆍ모토로라와 잇따라 거래를 성사시킨 데 이어 HPㆍ델 등 글로벌 메이저 노트북 업체와도 장기 공급물량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 이후에도 LG화학은 스마트폰ㆍ울트라북 등 신규 IT기기에 적합한 고용량 초슬림 전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시장지위를 강화해가고 있다.
삼성SDI도, LG화학도 '2차전지 코리아' 시대 개막의 최고 비결은 차별화 전략이었다.
국내 업체들이 이처럼 차별화된 전략과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국내 전지업계뿐만 아니라 전세계 2차전지업계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실제 일본의 2차전지 조사기관인 IIT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삼성SDI의 독주와 한국 2차전지업계의 전세계 2차전지 시장점유율 1위 탈환 배경에 대해 세밀히 분석했다. IIT는 보고서에서 "삼성SDI 등 한국 업체들이 일본을 제친 것은 전략적인 영업과 제품개발, 전지 성능, 안정성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삼성SDI와 LG화학이 똘똘 뭉쳐 소형 리튬 이온 2차전지 시장에서 한국을 제1의 국가로 올려놓은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2차전지는 반도체와 LCD에 견줘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사업"이라며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넘버원 2차전지 생산 국가로의 도약은 한국 전자산업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삼성SDI의 경우 국내 천안ㆍ울산공장 외에 중국 톈진에 공장을 건설해 전세계 IT 공장인 중국 시장을 정조준했다. LG화학 역시 국내의 오창공장과 함께 중국 난징에서 2차전지를 생산해 중국 현지의 전세계 세트업체 공장을 타깃으로 삼는 등 수요자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것도 한국이 2차전지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으로 평가되고 있다.
'2차전지 코리아'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은 한국의 2차전지 사업이 일본에 비해 10년 가까이 늦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일본의 소니가 1991년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나선 후 국내 업체로는 LG화학이 1999년, 삼성SDI는 2000년에 비로소 2차전지 상용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부품에서 일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지만 삼성SDI와 LG화학은 불과 상용화 10년 만에 일본을 추월하는 대역전극을 펼친 것이다.
불과 4년 전 국가별 점유율만 놓고 봐도 얼마나 극적인 역전인지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일본의 소형 2차전지 점유율은 50.7%로 전세계 2차전지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놓고 있었다. 삼성SDI의 점유율 역시 15.1%에 불과하고 LG화학은 6.8%에 그쳤다. 이때만 해도 국내 업체는 도저히 일본 업체를 추월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삼성SDI는 2009년 18.4%의 점유율, 2010년 19.8%, 2011년 23.6%로 점유율을 꾸준히 끌어올렸다. 올해에는 24.7%의 점유율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일본 ITT는 낙관하고 있다.
국가별 점유율에서 한국 점유율은 2008년 22.0%, 2009년 31.4%, 2010년 34.6% 2011년 40.0%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올해의 경우 43.3%의 점유율 달성이 예상된다. 반면 일본은 2008년 50.7%를 기록했던 점유율이 2009년 43.2%, 2010년 41.0%, 2011년 35.4%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올해는 더 떨어져 31.6%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삼성SDI와 LG화학 등이 '2차전지 코리아' 시대의 개막에 안주하지 말고 중대형 2차전지 시장에서도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소형 2차전지 시장이 꾸준히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대형 시장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핵심 산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가가 고공행진을 벌이면서 차량용 중대형 2차전지 시장규모는 오는 2015년에 670만대에 달할 것으로 관측되고 2020년이면 1,0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사장이 최근 독일 BMW 본사를 찾은 것도 중대형 시장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삼성의 전략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김병기 키움닷컴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이면서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사장이 2차전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만큼 그룹 차원에서 삼성SDI에 대한 기대가 큼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또 전기차 시장 개막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을 정부가 지원한다면 이들 업체는 국내 시장에서 쌓은 제품 품질과 신뢰성ㆍ경제성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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