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독일로의 초대Ⅰ-김현숙 새누리당 의원


지난해부터 여성의 일·가정 양립주제로 독일 정부와 의회, 노총과 경총, 민간전문가들을 만나러 오지 않겠느냐는 독일대사관의 정중한 초대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기초연금 도입을 위한 여야의 불꽃 튀는 논의가 한창인 때라 어려웠고 올해는 늦게 시작된 정기국회 일정으로 짬을 내기 어려웠지만 통일된 독일의 일·가정 양립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올해는 한국과 일본의 여성국회의원을 동시에 초청하는 자리라 짧은 시간 동안 독일의 베를린과 뒤셀도르프로 날아갔다.

실용적인 독일 사람답게 일정은 하루 3회 이상의 공식미팅으로 빡빡하게 채워졌으며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조찬·점심미팅을 포함해 숨 가쁘게 최근 독일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변화와 노력에 대한 다양한 집단의 설명을 흡수하고 간간이 우리나라의 현황을 설명하며 일본 현황도 공유하는 한독일 3국의 국제회의 같은 일정이었다.


많은 일정 속에 떠날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왜 우리나라와 일본의 여성의원들을 동시에 초대할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답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내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가장 어렵고 출산율도 낮으며 여성의 연령별 경제활동참가율이 M 곡선을 유일하게 공통으로 그리는 한국과 일본에 EU 국가 중 보수적인 독일의 눈부신 변화를 공유하고 싶은 이유인가 추측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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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찬미팅에 나온 외무부 차관의 대답은 참 근사했다. "독일은 유럽의 많은 나라에 대해 잘못한 것이 많다. 나는 출장을 갈 때마다 독일이 해를 가한 나라에 사과한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많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인접한 두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함께 초대했다." 직접적인 단어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일본이 한국에 진심으로 매번 끊임없이 사과'하고 사이좋은 관계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짙게 깔려 있었다. 너무나 바쁜 일정이어서 일본의 여성의원들과 한일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던 차에 차관의 한마디가 일본의원들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통일독일이 한일 관계에 주는 일종의 공식 메시지처럼 들렸다.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내가 이제 통일 25주년을 바라보는 독일에서 통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인식 차이를 거의 극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가 만난 국회의원 중에는 동독의 작센지방 출신도 있었고 서독 출신도 있었지만 서로 큰 거부감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인상을 받았다. 여성의 일자리 창출과 보육시설 확대를 통해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문화까지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가 방문한 목적인 일·가정 양립 관련 미팅에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고 서로 충돌하는 제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아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국가 간의 관계를 복원하라는 따뜻한 시선을 느꼈을 때는 멀리 날아와 힘든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U 국가 중에서 가장 풍족하지만 모두가 소박하게 살며 분단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이뤄낸 나라, 이제 여성일자리와 보육시설 확대를 통해 가족의 일·가정 양립을 지향하는 나라, 독일은 늘 멀고 크게 느껴졌었는데 이제 그 나라가 내게 다소 가깝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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