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의도의 강모씨(34·회사원). 지난 4월초 아내가 출산도중 병원측 마취잘못으로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의료사고를 당한 것이다. 담당의사는 산모를 인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응급이송만 시키고 잠적했다. 강씨는 의사측 대리인과 협상끝에 배상합의를 했다. 회사는 휴직을 한 채 꼬박 50여일을 소비했다. 이처럼 해마다 국내에서는 1만여건이 넘는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이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기 때문. 이 때문에 환자·보호자는 물론 병원이나 의료진 모두가 사고발생 때 마다 큰 고초를 당한다.정부는 지난 88년부터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법무부·국회 그리고 이해집단간 갈등으로 아직도 해결가닥을 못잡고 있다. 피해자는 사건해결을 위해 생업을 중단하고, 의료진들은 사고위험이 따르는 진료자체를 기피하는 등 의료공급자·소비자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참다못한 의료현장의 개업의들이 나섰다. 이들은 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과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의료분쟁조정법」을 이번 국회에서는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의료사고 발생빈도가 가장 높은 산부인과개원의들은 『산부인과 개원의 38% 정도가 의료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10년 넘게 표류중인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과 같은 정부차원의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회장 이준환)는 최근 총회를 통해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분쟁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의료계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거나 응급의료체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일선 산부인과 개원가에 불고 있는 의료사고 공포증은 곧 ▲분만실과 입원실을 폐쇄하고 ▲전공의들이 산부인과 전공을 기피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같은 심각한 의료왜곡화 현상을 직시, 의료공급자나 소비자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장치 마련을 더 이상 미룰지 말라』고 말했다.
이들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고육지책으로 의료사고를 스스로 해결키 위해 「산부인과 의사 및 병원 배상책임보험」을 개발, 시행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회원들의 가입률이 저조하고 완벽한 장치가 되지 못해 각종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산부인과 한 개원의는『의사배상 책임보험의 보험료는 궁극적으로 의료수가 반영·세금공제 등 정책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전제, 『타 진료과목의 의사들도 의료사고에 따른 분쟁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의사협회가 나서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에 적극 나서 올 정기국회에서는 끝낼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에 따르면 소송전 조정을 거치도록 하는 조정전치주의 도입과 의사 책임보험 또는 책임공제 가입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을 매년 추진하려 하지만 주요 조항을 둘러싸고 복지부·법무부·의료계 그리고 국회등의 이해가 엇갈려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정섭 기자SHJ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