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빌딩 파이낸스 2013-전환기, 금융산업 틀 다시 짜라] <1> 기본이 답이다

"자산관리, 우물안 개구리 안된다" 인재 키워 세계로 나가야<br>전문인력 육성에 과감한 투자<br>해외 진출 땐 신뢰부터 쌓아야<br>정부 선진인프라 구축 등 지원을



지난 수십년간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고속 경제성장에 따른 기업ㆍ가계의 금융수요 급증에 힘입어 급속히 자산을 불려왔다.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 전 국민이 앞다퉈 주택ㆍ상가 투자에 나섰고 금융권의 부동산담보대출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캐시카우 상품이었다. 실제 금융권 자산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890조원에서 급증해 2012년 말에는 2,953조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이 같은 성장 공식이 깨지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000조원의 가계부채는 잠재적 부실의 부메랑으로 다가오고 있고 저성장 속에 기업 투자가 시들해지며 기업금융 또한 변변치 않다. 2011년 이후 한국 경제는 9분기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산더미 같은 빚에 짓눌려 가계소비는 죽어 있고 기업은 투자할 엄두를 못 내면서 일부에서는 디플레이션 시대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예상성장률 2.6%(정부 전망치)는 1970년 이후 5번째로 낮은 수치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5.7%), 1980년 2차 오일 쇼크(-1.9%),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0.3%) 등 과거의 경우는 모두 갑작스런 외부 충격파 때문으로 단기간에 회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근년의 저성장은 경기침체에도 기인하지만 근본적으로 고령화, 경제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적 추세선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경영 패러다임을 바꿔라=저성장 시대에는 과거처럼 은행이 단순 대출 장사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경제 파이가 커지지 않기 때문에 대출 자체 수요도 늘기 어렵다. 예금시장도 변한다. 고성장 시대는 고금리여서 예금이 재산증식 수단이었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 소비자는 저위험 중ㆍ고수익의 차별화한 상품을 원한다.

김동성 금융감독원 감독총괄팀장은 "소비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자산을 효과적으로 불려줄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거세질 것"이라며 "이에 대응해 은행 등 금융사들은 고품질의 자산관리 서비스 부문을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투자와 양성이 관건이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의 서비스 모델은 금융자문 서비스로 전환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자산관리, 해외시장별, 산업 분야별 인재를 키우는 은행의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 시중은행의 한 PB담당 임원은 "앞으로 자산관리시장이 커질 게 확실하지만 은행은 그에 맞춰 국내외를 넘나드는 금융상품 소개 및 컨설팅을 해줄 수 있는 인재풀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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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의 여전한 구태=금융사들이 도전에 직면한 곳은 포화상태에 빠진 국내시장뿐이 아니다. 저마다 해외시장 개척을 외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 신흥시장인 중국을 보자. 은행의 경우 회장이 바뀌면 전임자 색깔 지우기에 나서면서 해외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가 일쑤다. 이러다 보니 일관성 있고 장기적인 해외 현지화 전략이 추진될 리 만무하다. 당장 회장이 바뀌면서 A금융지주는 중국을 포함한 해외전략의 전면 재검토에 나섰고 중국법인은 일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지점을 내야 하는데 한국 본부 인사가 확 바뀌다 보니 눈치만 살피며 업무가 마비상태에 있는 것이다.

지난해는 B은행 중국법인이 운영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한시적인 지점 설치 불가, 신상품 인허가 보류 조치를 받았다. B은행 중국법인의 최고경영진 절반가량인 10여명이 한꺼번에 귀국 발령을 받았던 것. 이를 놓고 중국 베이징 은행감독국의 류팡(柳芳) 감독관리처장은 "도대체 중국에서 사업을 지속할 의향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이렇게 한꺼번에 경영진이 바뀌면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한가"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한국 금융의 해외 현지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서실 출신 등 보은인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해외 인사 발령, 현지 전문가 육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균 2년마다 교체되는 해외 주재원 인사로 장기적인 신뢰와 네트워크 구축이 생명인 금융 비즈니스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금감원 베이징사무소의 이규엽 수석조사역은 "한국계 중국법인은 2년마다 교체되는 잦은 인사, 전문성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네트워크와 영업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자산국가 비전을 세워라=새로운 시대에 맞는 금융산업의 틀을 세우려면 민간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가 나서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은 물론 국내외를 넘나드는 금융서비스가 되도록 외환ㆍ세제ㆍ연금 부문 등 다각도에서 총체적으로 선진화한 제도적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금융에는 국경이 없다. 국내 소비자든, 국외 소비자든 좀 더 나은 상품을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필요성을 인식하고 신흥시장 진출 지원, 100세 시대 도래에 따른 금융산업 발전전략 등을 담은 '금융 비전'을 오는 10월에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에는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신흥시장인 중국이 바로 옆에 있다. 비행기로 3시간여 거리에 세계 인구의 3분의1이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금융의 모습은 초라하다. 중국 진출 한국계 은행이 중국 전체 은행권에서 차지하는 자산 비중은 0.07%에 불과하다. 증권업은 이제 모 대형 증권사가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합작 사인을 앞두고 있다. 금융은 역사와 신뢰가 수십년 쌓이며 성장하는 사업이다. 당국은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국내외 마당을 만들어주고 민간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차분하게 무너지지 않을 성을 쌓아야 한다.


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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