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시대가 막을 올린 뒤 산업정책의 화두(話頭)는 단연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었다. 빅 딜이란 일상생활에서 「큰 일」「중요한 일」이라는 의미를 갖는 영어. 상인들이나 금융권 큰 손들 사이에서 「덩치가 큰 거래」를 나타내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우리나라에선 새 정부 출범후 기업간 대규모 사업교환을 뜻하는 「비즈니스 스와프」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가 빅 딜을 추진한 목적은 1차적으로 과잉투자해소였다.
대기업들의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과 빚더미 경영, 과잉투자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특정사업을 경쟁력있는 기업에 몰아주는 「빅 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IMF체제를 부른 화근 가운데 하나가 대기업들의 과당경쟁이었다. 자동차와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등 「돈이 된다싶은 업종」에는 5대 그룹이 너나없이 뛰어들어 혈전을 치르다보니 과잉·과오투자가 이뤄졌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와 재계는 올들어 내내 「빅 딜공방」으로 시간을 보냈다. 정부는 주요기업들에게 빅 딜을 주문하다가 전경련에 자율조정을 맡겼고, 재계는 『무리한 빅 딜은 부작용만 양산한다』며 성급한 정책추진에 반대하고 나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물론 박태준(朴泰俊) 자민련총재, 이규성(李揆成) 재정경제부장관, 박태영(朴泰榮) 산업자원부장관 등 정책당국자들이 모두 채찍을 들고 나서 대기업들의 빅 딜을 촉구했다.
정부는 『빅 딜에 소극적인 기업에는 여신회수를 비롯한 금융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며 강경입장을 수차례 밝혔고, 일각에선 『빅 딜이 타결되지 않으면 해당업종에 워크아웃을 적용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5대 그룹은 지난 9월3일 7개업종에 대한 빅 딜안에 서명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항공기, 철도차량, 발전설비, 선박용엔진, 정유 등이 빅 딜의 대상으로 선정됐다.
정부는 연말까지 빅 딜에 따른 단일법인의 경영주체 선정과 경영계획 작성, 금융권의 지원방안 등 세부절차를 마무리짓고 1차 빅딜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빅 딜이 넘어야할 산은 아직도 많다. 현대와 LG가 반도체 통합법인의 경영주도권을 놓고 막바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경기 회복을 틈탄 「빅 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발전설비와 선박용엔진 등도 후속협상에서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금융권을 통한 강제조정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빅 딜지원조치(세금감면, 대출금 출자전환)가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한데다 대기업들이 빅 딜을 「시한부 동거」로 활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들이 빅 딜로 일단 위기를 모면한 뒤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갈라설 것이 뻔한데, 국민의 부담으로 대기업의 부실경영을 메꾸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란 지적도 있다.【한상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