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전경련 회장의 거취문제가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손회장은 지난 13일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 중이다. 그의 범죄 혐의는 명백하고, 또 스스로 시인한 것이어서 번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래서 손 회장은 판결직후 전경련 회장직의 사의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회장단은 유죄가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 까지 `중간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회장의 거취문제는 기업 쪽에서도 주요 관심사이다. SK㈜ 노조는 손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하고 해임을 요구한 상태다. SK㈜의 외국계 대주주인 소버린 측도 손회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한 상태며, 이를 거부하면 임시주총을 소집해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인정해 다음달 손길승 대표이사 해임요구를 포함한 중징계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엔 청와대가 손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대화파트너로 삼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노무현대통령의 방중수행 기업인에서 제외된 것이나, 정부 주최의 경제관련 국제회의 기조연사가 바뀐 것 등을 볼 때 정부의 손회장 기피설에는 개연성이 상당해 보인다.
정부가 손회장의 회장직 수행과 관련한 결격사유를 거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손회장은 SK글로벌 사건에서 최태원회장 이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 같은 분식이 그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기간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은 전경련 회장을 겸하고 있는 특수한 신분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본다.
아무리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색하다. 재계는 윤리경영 투명경영을 말하고 있고, 정부는 경제개혁을 말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보나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손회장은 자신의 거취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본다.
손회장이 자의만으로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것이 아니듯, 재계에는 전경련 회장 기피현상이 여전히 팽배하다. 손회장이 겪고 있는 곤경이 그런 기피증을 불러오는 원인 중의 하나다. 정부와 재계는 이 문제에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정책에 대한 재계의 쓴소리와 전경련회장 퇴진요구설이 시기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일부 시각이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 이다.
<임웅재기자 jael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