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이 있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종합 디벨로퍼 역할을 하는 식으로 건설산업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시공순위 57위인 ㈜신일의 부도를 계기로 국내 건설사업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건설사업은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추라는 정부의 조치로 땅 확보가 어려워진 건설사들이 단순시공업체로 전락하면서 시행과 시공이 분리되는 구조로 전환됐다. 문제는 시행사들의 규모가 대부분 영세하다는 점. 이에 따라 자금조달 비용을 줄이기 위한 시공사의 연대보증이 필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영세한 시행사가 사업성 예측이나 리스크 관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지급보증을 선 시공사가 원금과 이자 상환 의무를 지게 된다. ㈜신일의 경우도 총 1조원에 달하는 시행사 부채에 대한 연대보증이 이번 부도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산업연구원의 백승준 박사는 “제2, 제3의 ㈜신일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시행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자금력이 있는 대형 건설사들이 디벨로퍼 기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설사업에서 원활한 리스크 관리 기능의 중요성은 최근 잇따른 중소업체들의 부도를 계기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김종욱 우림건설 상무는 “경영자의 독단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사업지를 고를 때 다수의 임원으로 구성된 투자심의위원회를 가동, 엄격한 심사를 통해 만장일치일 경우에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건설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이 같은 리스크 관리 기능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전반의 구조 개선이 어려운 만큼 우선 보증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공제조합의 보증 등을 통해 시공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보증기관이 담당하는 기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진행할 경우에는 금융권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PF란 건설사와 금융사가 일정 지분의 참여 형태로 프로젝트 회사를 세우고 사업의 수익성을 담보로 프로젝트 회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진행되는 PF는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참여 기업들은 원금 상환 부담을 지지 않는다. 또 미래의 현금흐름 자체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시공사의 연대보증도 필요가 없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개발계획의 조사와 입안의 단계부터 참여해 프로젝트의 수익성이나 업체의 사업수행능력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리스크 관리를 한다. 하지만 국내 부동산 PF는 말만 PF지 시공사가 연대보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존의 부동산 대출관행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우규민 ㈜신영 개발사업부 상무는 “국내 자금시장은 은행이 골라서 대출을 줄 정도로 아직은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라며 “금융기관이 PF의 수익성을 판단할 정확한 장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제대로 된 PF를 진행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